별하나

겁난다

달그리매 2007. 8. 6. 16:38
 

      겁난다 / 유안진

             

            토막 난 낙지다리가 접시에 속필로 쓴다
            숨가쁜 호소(呼訴)같다

             

            장어가 진창에다 온몸으로 휘갈겨 쓴다
            성난 구호(口號)같다

             

            뒤쫓는 전갈에게 도마뱀꼬리가 얼른 흘려 쓴다
            다급한 쪽지글같다

             

            지렁이도 배밀이로 한자 한자씩 써 나간다
            비장한 유서(遺書)같다

             

            민달팽이도 목숨 걸고 조심조심 새겨 쓴다
            공들이는 상소(上疏)같다

             

            쓴다는 것은 저토록 뜨거운 육필(肉筆)이란 말이지
            몸부림치며 혼신을 다 바치는 거란 말이지

             


                                                   

                                          유안진 시인

            1941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고, 서울대 사범대 교육심리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5년 ‘현대문학’에 시가 추천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달하」「절망시편」「물로 바람으로」「그리스도, 옛애인」「달빛에 젖은 가락」「날개옷」「월령가 쑥대머리」「영원한 느낌표」「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어라」「누이」「봄비 한 주머니」「다보탑을 줍다」가 있다. 한국펜문학상 · 정지용문학상 · 월탄문학상 · 한국간행물 윤리위원회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