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한 마리 날면 / 김명리
한 마리 새가 은사시나무의 수없이 많은 잎맥들을 흔들어댄다 새 한 마리 날면 박모의 어스름 속에서도 물살이 느껴진다
강가의 줄, 부들, 갈대들 불덩어리 같은 몸 낮추고 바람에 길을 터준다 이 바람은 분명 땅거미 깊숙이 내가 흘려보낸 물
멀어진 것들 까마득한 것들이 한순간 물의 입자가 되어 돌아와 있다 바람을 재우치던 물오리 떼의 매끈한 유영, 뭇 새들의 오돌토돌한 물갈퀴 흔적이 다 만져진다
링거 병 치켜들고 저녁의 한가운데로 흘러오는 물소리
미등처럼 깜빡이는 은사시나무 잎잎 속에는 사람의 마을도 굽이굽이 아득히 새 한 마리 날개 쳐 날아간 방향으로 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