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하나

저 물방울들은

달그리매 2007. 8. 14. 00:46

    저 물방울들은 / 나희덕

     

     

    그가 사라지자

    사방에서 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수도꼭지를 아무리 힘껏 잠가도

    물때 낀 낡은 씽크대 위로

    똑,똑,똑,똑,똑....

    쉴새없이 떨어져내리는 물방울들

     

    삶의 누수를 알리는 신호음에

    마른 나무뿌리를 대듯 귀를 기울인다

     

    문 두드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발자국 소리 같기도 하고

    때로 새가 지저귀는 소리 같기도 한

     

    아, 저 물방울들은

    나랑 살아주러 온 모양이다

     

    물방울 속에서 한 아이가 울고

    물방울 속에서 수국이 피고

    물방울 속에서 빨간 금붕어가 죽고

    물방울 속에서 그릇이 깨지고

    물방울 속에서 싸락눈이 내리고

    물방을 속에서 사과가 익고

    물방울 속에서 노랫소리가 들리고

     

    멀리서 물관을 타고 올라와

    빈 방의 침묵을 적시는 물방울들은

    글썽이는 눈망울로 요람 속의 나를 흔들어준다

    내 심장도 물방울을 닮아

    역류하는 슬픔도 잊은 채 잠이 들곤한다

     

    똑,똑,똑,똑, 똑.....

    빈혈의 시간 속으로 흘러드는 낯선 핏방울들

     

     

     

     

     

     

     

    문학수첩 2007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