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하나

숙영식딩

달그리매 2007. 9. 5. 12:44

    숙영식딩 

                                              손진은

                                           


    늦점심 후 마루끝, 구두끈 매다
    차양을 뛰어다니는 빗소릴 듣네
    석류꽃 환한 그늘에 반쯤 가린 간판
    '-'가 떨어져나간 '숙영식딩'에
    어룽어룽 빗방울들, 매달리네
    천마총 돌담길 오십년도 넘게 지킨 밥집
    우물가 숙영이라는 이름 다홍치마 할머닌
    여즉 그 흰손으로 푸성귀 씻고 있고
    안쪽 방 벽에는
    안강전투에서 전사했다는 소문의,

    광대뼈가 나온 사내 무겁게 훈장 매단 채
    이 쪽을 인자한 웃음으로 건너다보네
    숙영식당, 푸른 아크릴 간판이 희멀건 색으로 바래는 동안
    비바람 햇살 벌떼처럼 잉잉대며 갉아대도
    그리움은 딩, 딩, 덩더웅 딩,
    아직 가야금 청줄로 울리고 있다는 거네
    석류, 가늘게 떨리는 잎새에 얹어논 가슴처럼
    숙영式 '딩'이네
    아까부터 작은 몸집의 저 새는
    스렁스렁 덩스렁

    신발끄는 소리로 크는 석류꽃 봉오리에게 장가라도 들려는지
    가지 새 그늘에 쉴새없이 들락거리고
    나는 반백년을 은핫물처럼 흐르며
    하늘에 우물에 되쏘아 보냈을 그 '영원'을 떠올려보는 건데
    유복자일까, 계산대 중년의 아들에게 물어보아도
    그는 넉살좋은 웃음만 덤으로 끼얹어 준다네
                                                     - 『서정시학』 ‘06 여름호

     

     

     

    시작노트 

     - 모름지기 시인은 자기 작품에 대하여 군말을 붙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번에 어떤 지면에 시작노트 비슷한 걸 붙일 기회가 있어서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좀 더 풀어서 쓰면 좋았을 텐데.-

     

     그리움과 인간이 만나는 방식은 운율이라고 생각한다. 이 운율은 울림이라 해도 좋겠다. 지키지 못하고 풍선처럼 피식 빠져버린 감정이라면 무슨 소용 있겠는가.

      경주 천마총 돌담길에는 내가 젤로 좋아하는 숙영식당이 있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아직도 새색시 모습으로 정갈한 음식을 내는 밥집인데, 안방 벽에는 젊은 사내의 눈길이 아직도 푸성귀를 씻는 그 할머니의 목덜미께를 만진다. 굳이 석류 잎새에 날아다니는 작은 새를 오십년 전의 신랑이라고, 꽃봉오리를 새색시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그 집에서 서면 빗방울도 간판글자를 딩딩 덩더웅딩 튕기며 내리고, 석류잎새도 스렁스렁 덩스렁 신발끄는 소리로 자란다.

      그리움의 힘이요 울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