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하나

흉터 속에는 첫 두근거림이 있다

달그리매 2007. 9. 8. 17:05

    흉터 속에는 첫 두근거림이 있다 

     

     - 정영선  


     

    비 온 뒤 말갛게 씻겨진 보도에서
    한때는 껌이었던 것들이
    검은 동그라미로 띄엄띄엄 길 끝까지 이어진 것을 본다
    생애에서 수없이 맞닥뜨린, 그러나 삼킬 수 없어 뱉어버린
    첫 만남의
    첫 마음에서 단물이 빠진 추억들
    첫 설렘이 시들해져버린 것들은 저런 모습으로
    내 생의 길바닥에 봉합되어 있을지 모른다
    점점으로 남겨진 검은 동그라미 하나씩을 들추면
    가을잎 같은 사람의 미소가 여직 거기 있을까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너무 다급해서
    차창의 풍경을 보내듯 흘려버린 상처들
    비 맞으면 저리 깨끗하게 살아난다
    씻겨지지 않은 것은 잊혀지지 않은 증거이다
    어떤 흉터 속에 잠잠한 첫 두근거림 하나에 몸 대어
    살아내느라 오래 전에 놓아버린,
    건드리기만 하면 모두 그쪽으로 물결치던
    섬모의 떨림을 회복하고 싶다
    단물의 비밀을 흘리던
    이른봄 양지 담 밑에서 돋던 연두 풀잎의 환희를
    내 온몸에서 뾰죽뾰죽 돋아나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