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남 시모음
슬픔도 가꾸면 재산이 된다
귀하게 얻은 슬픔이란
뿌리가 잘 썩는 분재 같아
고운 흙으로 분갈이를 해주지 않으면
내부 공간을 심하게 망가뜨린다.
따라서 내부 공간을 가꾸기 위해서는
보습용 물레방아, 흔들의자를 들여놓고
대(竹)발로 밖을 차단해 놓은
마음의 베란다 한 켠이 필요하다.
자주 눈길을 주며, 웃자라거나
삐져자란 슬픔을 다듬을 수 있도록
예쁜 창도
안으로 달아놓아야 한다.
잘 보살핀 슬픔, 옹이가 곱게 앉은 슬픔이란
거실, 현관, 정원, 옥상 어디에 내놔도
주변을 깊고 넓게 변하게 한다. 값 비싼 난(蘭)처럼
진한 향기를 감돌게 하고, 조용한 숲속으로 바꾸어준다.
저기, 슬픔을 방치해
내부 공간이 헛간처럼 망가진 사람이
내부 공간 밖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밑에 관하여
나는 위보다는 밑을 사랑한다
밑이 큰 나무, 밑이 큰 그릇, 밑이 큰 여자……
그 탄탄한 밑동을 사랑한다
위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밑동도 다 넓은 것은 아니지만
참나무처럼 튼튼한 사람,
그 사람 밑을 내려가 보면
넓은 뿌리가 바닥을
악착같이 끌어 안고 있다
밑을 잘 다지고 가꾸는 사람들 ……
우리도 밑을
논밭처럼 잘 일궈야 똑바로 설 수 있다
가로수처럼 확실한 밑을 믿고
대로를 당당하게 걸을 수 있다
거리에서 명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밑이 구린 것들, 밑이 썩은 것들은
내일로 얼굴을 내밀 수 없고
옆 사람에게도 가지를 칠 수 없다
나는 밑을 사랑한다
밑이 넓은 말, 밑이 넓은 행동. 밑이 넓은 일……
그 근본을 사랑한다
근본이 없어도
근본을 이루려는 아랫도리를 사랑한다
‘아줌마’라는 말은
일단 무겁고 뚱뚱하게 들린다.
아무 옷이나 색깔에 잘 어울리고
치마에 밥풀이 묻어있어도 어색하지 않다.
그래서 젊은 여자들은 낯설어하지만
골목에서 아이들이 ‘아줌마’ 하고 부르면
낯익은 얼굴이 뒤돌아본다. 그런 얼굴들이
매일매일 시장, 식당, 미장원에서 부산히 움직이다가
어두워지면 집으로 돌아 가 저녁을 짓는다.
그렇다고 그 얼굴들을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
함부로 다루면 요즘에는 집을 팽 나가버린다.
나갔다하면 언제 터질 줄 모르는 폭탄이 된다.
유도탄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진 못하겠지만
뭉툭한 모습으로도 터지면 엄청난 파괴력을 갖는다.
이웃 아저씨도 그걸 드럼통으로 여기고 두드렸다가
집이 완전히 날아 가버린 적 있다.
우리 집에서도 아버지가 고렇게 두드린 적 있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는 한번도 터지지 않았다.
아무리 두들겨도 이 세상까지 모두 흡수해 버리는
포용력 큰 불발탄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누워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올라타고 싶다
나는 누워만 있는 것을 보면 올라가보고 싶다.
그 누워 있는 것들에 신나게 올라가서
한번 가쁜 숨을 매몰차게 몰아쉬고 싶다.
가쁜 숨을
기쁘게
내쉴 것들을 고르다 보니,
나를 기다리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누워 있는 침대, 누워 있는 천장, 누워 있는 하늘…
저기 한 여자도
한사코 누워만 있는 바위를 올라타느라
가쁜 숨을
크게 내뿜고 있다.
여자가 슬슬 기어오르는 모습을 보니까
귀엽다.
용감해 보인다.
아니, 불행해 보인다.
세상에!
오죽했으면 여자가 하늘을 올라타야 할까?
나는 누워 잠자는 걸 보면 꼭 한번 올라타 보고 싶다.
누워 있는 상사, 누워 있는 행정, 누워 있는 학문…
빨래
이렇게 모가지를 비틀면 어떡하냐고
찔끔찔끔 눈물을 짜며
그가 완강하게 버틸 때면,
이놈 고분고분하지 않는다고
시커먼 거짓말 뱉어내지 않고 끝까지 숨기고 있다고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두둘겨 패서
질질 옥상으로 끌고 가 거꾸로 매달아버린다. 그녀는
그러면 그는 그때서야 얘기를 꺼낸다
정말 이렇게 나아가서는 안되겠다고,
어떻게든 집안에
평화의 깃발은 펄럭여야겠다고
보라, 그녀는 그를 다루는 1급 기술자다
가을이 우리를 재촉하고 있다
이제 그만 툭툭 자리를 털고
돌아갈 채비를 해야 할 시간이다,
가을이 문턱에서 가볍게 노크해 올 때.
대지는 한여름의 열을 뿜고
초록은 아직 꿈속을 헤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간에 우리는 벌떡 일어나
풀어논 생각들을 서둘러 거두어야 한다.
한결 부드럽게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불어와 窓들을 끝없이 열어놓고
대문 바깥쪽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모든 것들이 새로운 출발을 몹시 그리워하고 있다.
들녘도 새로운 손님들을 마중나가는 시간,
이런 시간, 이런 지점에 갇혀 우리는
언제까지 취하여 있을 수는 없다.
다음 계절에 지각하기 전에
아쉬운 기억들이 옷깃을 잡아도 우리는
곤충처럼 눈을 부릅뜨고
등불을 하나씩 붙들고
깨어 있어야만 한다.
문턱 앞에는 벌써
한 송이 국화가
우리에게
가을을 온몸으로 던져오고 있다.
가을 하늘
누가 쓴 편지일까?
거미가 소인을 찍고
능금나무가 저렇게 예쁜 우표를 붙인.
거진항에서
사람은 바다를 배경으로 거느릴 때
아름답다는 걸 알았습니다
저렇게 넓고 푸른 바다를 거느리려면
절벽과 싸우는 하얀 파도가 있어야 한다는 걸
밤길을 위해 늘 자신에게 경고하는
외로운 등대도 싸우고 있어야 한다는 걸
귀항하는 거진항의 어부들을 보고 알았습니다.
누구나 다 그런 바다를 배경으로
거느린 건 아니지만
진정으로 바다를 거느린
사람들은 결코 높은 데를 오르려 하지 않고,
깊이를 사랑할줄 안다는 걸.
물결을 거스르는 법 없이
바다와 함께 흔들리며 산다는 걸.
그 골목은 세상을 모두 둥굴게 잠재운다
깎아주고 덤이 있는 골목
그 골목은 좌판 사과가 둥굴고,
리어카의 손잡이가 둥굴고,
그리고 그 흥정이 둥구네.
거기에서 소리를 지르면
순이, 철이, 용호네 아줌마들도
골목에서 둥굴게 모여드네.
구불구불 세상을 돌아서 골목도
하늘도 올라가고, 밤이 되면
둥근 동산을 연탄처럼 굴러서
달이 떠오르네.
그러나, 보게나!
둥굴지 못해 한 동네를 이룰 수 없는 것들,
둥근 것을 깔아 뭉개고 뻣뻣하게 서 있는 저 아파트들을.
이 곳에선 둥굴지 않으면 모두가 낯설어 한다네.
나도 허리를 둥굴게 말아 방문을 여네.
그 길이 꿈틀하네
한 할머니가 시골길을 가고 있네
맞은 편에서 여학생 한 명이 등장하네
둘은 뭐가 생각난 듯 훔쳐보며 갈라지고 있네
서로의 길을 자꾸만 자꾸만......
순간! 들녘한 가운데 놓이는
저 아름다운 헌 길과 새 길
그리운 옛집
옛집은 누구에게나 다 있네. 있지 않으면 그곳으로 향하는 비포장 길이라도 남아 있네. 팽나무가 멀리까지 마중나오고, 코스모스가 양옆으로 길게 도열해 있는 길. 그 길에는 다리, 개울, 언덕, 앵두나무 등이 연결되어 있어서 길을 잡아당기면 고구마 줄기처럼 이것들이 줄줄이 매달려 나오네.
문패는 허름하게 변해 있고, 울타리는 아주 초라하게 쓰러져 있어야만 옛집이 아름답게 보인다네. 거기에는 잔주름 같은 거미줄과 무성한 세월, 잡초들도 언제나 제 목소리보다 더 크게 자리잡고 있어서 이를 조용히 걷어내고 있으면 옛날이 훨씬 더 선명하게 보인다네. 그 시절의 장독대, 창문, 뒤란, 웃음소리.... 그러나 다시는 수리할 수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집. 눈이 내리면 더욱 그리워지는 집. 그리운 옛집.
어느 날 나는 전철 속에서 문득 나의 옛집을 만났다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나의 옛집이 아니었네.
그 시위 현장이 나를 성토하고 있다
반성하라!
경영, 경제학을 모르는 자.
효율, 효과를 모르는 자.
떠나라!
수요를 무시하는 자.
공급 위주로 모든 걸 판단하는 자.
공부하지 않고 시위 현장에 따라나온 나는
아예 자폭하라!
그러나 벽, 인식의 벽, 고정관념의 벽……
그 벽들을 올라타는 재미를 아는 또다른 나는
살아라!
그 모든 학문에서, 아 답답한 이 시(詩)의 현장에서……
나의 애인을 빨간색으로 바꾸려 한다
나의 애인은
이태리풍 카페 앞에 세웠을 때, 아름답다.
카세트 테이프처럼 머리칼이 길고 부드러우며
먼지에 민감한 하얀 치마를 입었다.
나의 애인은 내부가 청색으로 선팅되어 있고
선글라스 낀 남자가 핸들을 잡았을 때, 멋있다.
나는 그녀를 사 년 전에 만났다.
그녀와 시골에 다녀오고
설악산, 지리산을 함께 여행했다.
그러나 요즘 그녀는 짜증을 자주 낸다.
요구하는 게 많아 유지비가 많이 든다.
제동이 잘 되지 않아, 매우 불안하다.
에어백을 장착하고도 불안한 나의 애인,
이번 기회에 나는 나의 애인을
빨간색 바지를 입은
소형 \'티코\'로 바꿀까 한다.
누가 나의 중형 \'소나타\'를 몰고 가다오.
나의 제품은 고객감동을 지향한다
나는 경영한다 나의 발, 손, 머리를
아니, 나의 모든 신체들을,
이들은 나의 충실한 근로자들이다.
공장주인 나는 오늘 작업 지시를 하였고,
내 발은 나의 지시에 따라 언어의 공장으로 출근했고,
내 손은 낱말의 무게와 부피에 알맞은 상자를 만들었고,
머리는 새로운 상품 전략을 밤늦도록 짰다.
모든 신체들이 나를 위해 열심히 제품을 만들었다.
간혹, 내 지시에 어긋난 경우도 있지만
이들이 생산해내는 부가가치 속에는
나에 알맞은 색상, 향기, 소리들이
잘 디자인한 수출품처럼 포장되어 있다.
따라서, 문장부호나 감탄사를 바꾸면
전혀 다른 향기가 되고, 소리가 된다.
색깔이 다른 여자가 되고, 방향이 다른 행동이 된다.
그러나 내 사고의 총 생산, 나의 제품들은
고객들 요구에는 얼마나 부응하고 있는 것일까?
얼마나 고객들의 따듯한 밥이 되고, 술이 되고 있는 것일까?
누워있는 것을 보면 나는 올라타고 싶다
나는 누워만 있는 것을 보면 올라가보고 싶다.
그 누워 있는 것들에 신나게 올라가서
한번 가쁜 숨을 매몰차게 몰아쉬고 싶다.
가쁜 숨을
기쁘게
내쉴 것들을 고르다 보니,
나를 기다리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누워 있는 침대, 누워 있는 천장, 누워 있는 하늘.....
저기 한 여자도
한사코 누워만 있는
바위를 올라타느라
가쁜 숨을
크게 내뿜고 있다.
여자가 슬슬 기어오르는 모습을 보니까
귀엽다.
용감해 보인다.
아니, 불행해 보인다.
세상에!
오죽했으면 여자가 하늘을 올라타야 할까?
나는 누워 잠자는 걸 보면 꼭 한번 올라타보고 싶다.
누워 있는 상사, 누워 있는 행정, 누워 있는 학문....
눈이 내리면 총체적으로 불행하다
와, 눈이다 눈! 눈이 창을 가득 메우니
갑자기 따뜻해진다. 눈은 가볍게 살아
사각의 창을 자유롭게 한다. 나는 이 창을
친구에게 E-메일로 부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이런 날 눈은 창을 넘고 산을 넘어
동서남북 저 아득한 곳까지 내린다.
산골 마을에 내리고, 제주도에 내리고, 아메리카에도 내린다.
눈 감고 죽어라고 죽어라고 내리다가
팽이를 돌리고, 배를 타고, 비행기를 띄운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 카드로 되돌아오며
눈은 잠시 멎는다.
눈을 밟자, 이럴 때
멎은 눈을 밟으면 볼이 달아오르고 길까지 행복해진다.
행복한 길들은 밟으면 뽀드득 소리가 나고 모두 아름다운 흔적을 갖는다.
그러나 지나치게 밟으면 미끄러진다 행복도
그대여, 눈을 밟자 더 아프게 미끄러지기 전에
우와, 다시 눈이다 눈!
분분한 눈이 창을 또 한번 메우니
이번에 나는 불행해진다. 눈은 분분하게 다투면서
내 앞 창을 자유롭게 하지만 내 책상은 자유롭게 하지 못해
불행해진다. 다투니까 자유로워지고 다투지 않으니까 갇히는
이 답답한 世上으로 하여금 다시 한번 불행해진다.
그리하여 오늘은 총체적으로 불행이다, 창도 세상도 나도
눈은 어둠을 켜면서까지 계속 불행하게 불행하게 내린다.
뒤란을 가꿉시다
내 책상 앞에는 그림 한 장이 붙어 있는데
그건 한 스님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입니다.
가시나무가 엉클어진 깊은 산 속 돌밭길을
홀로 묵묵히 가고 있는 뒷모습.
나는 그 그림이 너무 아름다워 벽에 붙여 놓았습니다.
그런데, 붙여 놓은 그 그림은 이미 그림이 아닙니다.
이건 살아 있는 한 장의 풍경입니다.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가고
벽 속에서도 가고, 벽 바깥에서도 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뒷모습으로.
저렇듯 영혼이 높고 깊은 사람은
훌륭한 뒷모습을 거느리나 봅니다. 그동안
이 地上의 앞모습만 보면서 가꾸어온 나는
세상을 갑자기 깨어나게 하는
뒷모습이 존재한다는 걸 몰랐습니다.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진정한 삶이라는 것을.
저렇게 훌륭한 뒷모습도 가꿀 수 있다는 것을.
오늘부터 나도 나의 뒤란을 가꾸기로 합니다.
우선, 뒤란이 아름다운 말부터 구사하기로 합니다.
등나무가 내 목을 비튼다
등나무가 온몸을 비비 꼬며 벽을 타고 올라가고 있다.
나는, 그를 볼 때마다
밧줄이 있는 그의 행동이 맘에 든다.
모험에 가득 찬 그의 사고가 부럽다.
오른손, 왼손을 자유롭게 구사하며 난관을 극복할 줄 아는
사고, 손, 발, 머리, 가슴을 분간할 수 없는 사고, 여체
를 탐험할 때 쓰는 사고 ......
야, 오늘은 내게 없는 능력이 내 목을 비틀면서 올라가고 있구나!
내 목을 비틀어주니까
세상이 조금 보이기 시작한다.
학문이 보이고, 시가 보이고, 마누라가 조금 보이기 시작한다.
내 목을 비틀어주니깐.
그러나 나는 너무 많이 비틀어지면 이상한 사람이 될까봐
비틀어진 목을 반대로 비틀면서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나도 저렇게 시원한 그늘을 남에게 선사할 수 있을까 하고
은은한 향기까지 그 속에다 예쁘게 퍼뜨릴 수 있을까 하고.
모두가 들국화 시인이 되게 하라
이번 가을은 농부들 마음위에서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데굴데굴 굴러가게 하라.
그리하여 섬돌 아래에서 사발로 줍게 하라.
튕겨낼 듯 댓가지 휘고 있는 가을 과일들도
그 꽉 찬 결실만 생각하며 따게 하라.
혹 깨물지 못할 쭈그린 얼굴이 있거든
그것은 저 빈 들녘의 허수아비 몫으로만 남게 하라.
더 이상 지는 잎에까지 상처받지 않고
푸른 하늘과 손잡고 가고 있는 길 옆 들국화처럼
모두가 시인이 되어서 돌아오게 하라.
모슬포에서
오래도록 그리워할 이별 있다면
모슬포 같은 서글픈 이름으로 간직하리.
떠날 때 슬퍼지는 제주도의 작은 포구, 모슬포.
모-스-을 하고 뱃고동처럼 길게 발음하면
자꾸만 몹쓸 여자란 말이 떠오르고,
비 내리는 모슬포 가을밤도 생각이 나겠네.
그러나 다시 만나 사랑할 게 있다면
나는 여자를 만나는 대신
모슬포 풍경을 만나 오래도록 사랑하겠네.
사랑의 끝이란 아득한 낭떠러지를 가져오고
저렇게 숭숭 뚫린 구멍이 가슴에 생긴다는 걸
여기 방목하는 조랑말처럼 고개 끄덕이며 살겠네.
살면서, 떠나간 여잘 그리워하는 건
마라도 같은 섬 하나 아프게 거느리게 된다는 걸
온몸 뒤집는 저 파도처럼 넓고 깊게 깨달으며
늙어가겠네. 창 밖의 비바람과 함께할 사람 없어
더욱 서글퍼지는 이 모슬포의 작은 찻집, \'경(景)\'에서.
몽대항 폐선
저기 졸고 있는 개펄의 폐선 한 척이
앞에 서 있는 여자 한 명을, 아니
그 옆의 친구들의 친구들까지를
그립게 했다가 외롭게 했다가 한다.
그렇게 밀고 당기는 속성이
그 폐선 위에도 살고 있는 것인지
기러기가 몇 마리 뜨니 더욱 그런다.
난 예 풍경을 눈에 꼭 담고 상상한다.
폐선이란
낡아 저무는 모습이 아니라
저물어선 안 될 걸
환기시키는 어떤 힘이라는 것을.
그런 힘이 밀물 썰물처럼
주변을 끌어당겼다 놓았다 할 때
그게 진짜 아름다운 폐선이란 것을.
나도 언젠가는 저처럼
누굴 그립게 끌어당겼다가 놓았다 하는
몽대항 폐선이 되리란 꿈을 꾼다.
밑에 관하여
나는 위보다는 밑을 사랑한다.
밑이 큰 나무, 밑이 큰 그릇, 밑이 큰 여자...
그 탄탄한 밑동을 사랑한다.
위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밑동도 다 넓은 것은 아니지만
참나무처럼 튼튼한 사람,
그 사람 밑을 내려가보면
넓은 뿌리가 바닥을
악착같이 끌어안고 있다.
밑을 잘 다지고 가꾸는 사람들...
우리도 밑을
논밭처럼 잘 일궈야 똑바로 설 수 있다.
가로수처럼 확실한 밑을 믿고
대로를 당당하게 걸을 수 있다.
거리에서 명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밑이 구린 것들, 밑이 썩은 것들은
내일로 얼굴을 내밀 수 없고
옆 사람에게도 가지를 칠 수 없다.
나는 밑을 사랑한다.
밑이 넓은 말, 밑이 넓은 행동, 밑이 넓은 일...
그 근본을 사랑한다.
근본이 없어도
근본을 이루려는 아랫도리를 사랑한다.
슬픔도 가꾸면 재산이 된다
귀하게 얻은 슬픔이란
뿌리가 잘 썩는 분재 같아
고운 흙으로 분갈이를 해주지 않으면
내부 공간을 심하게 망가뜨린다.
따라서 내부 공간을 가꾸기 위해서는
보습용 물레방아, 흔들의자를 들여놓고
대(竹)발로 밖을 차단해 놓은
마음의 베란다 한 켠이 필요하다.
자주 눈길을 주며, 웃자라거나
삐져자란 슬픔을 다듬을 수 있도록
예쁜 창도
안으로 달아놓아야 한다.
잘 보살핀 슬픔, 옹이가 곱게 앉은 슬픔이란
거실, 현관, 정원, 옥상 어디에 내놔도
주변을 깊고 넓게 변하게 한다. 값 비싼 난(蘭)처럼
진한 향기를 감돌게 하고, 조용한 숲속으로 바꾸어준다.
저기, 슬픔을 방치해
내부 공간이 헛간처럼 망가진 사람이
내부 공간 밖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아름다운 모퉁이에 관하여
모퉁이가 아름다운 건물을 보면
사람도 모름지기 모퉁이가 아름다워야
아름다운
입체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향기로운
내부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퉁이가 둥근 말, 모퉁이가 귀여운 사랑
이들에게는
한결같이 모난 부분을 둥그렇게 구부린 흔적이
바라보는 사람을 황홀하게 한다.
나는 이 아름다운 옆구리를 한번 돌아가보면서
모퉁이란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될
건물의 중요한 한 분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부까지 품위 있게 해주는
의식의 요긴한 한 얼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퉁이를 가꾸는 사람들...
경제학적으로 검토하면 비효율적 투자이겠지만
모두가 모퉁이를 가꾸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또 어디를 돌아가보고 살아야 하나?
향기로운 넓이와 높이를 가진 입체물들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아름다운 섬이 없다
요즘 카페 여자들에겐 지느러미가 없다
부끄럼처럼 돋은 비늘이 없고
만져도 파닥거리지 않는다
파닥거릴 줄 모르다보니, 탁자 위에서
입만 뻐끔거린다. 탁한 물 속에서
아무 낚시나 덥석 물기나 하고
버팅기고 반항하는 쾌감이 없다
몸통을 뒤트는 신선함, 그 파닥거림이
내부를 얼마나 크게 열리게 하고
실내장식하는지를 모른다. 파도와 해일이
바다를 또 얼마나 아름답게 꾸미는 줄도
그러나 무엇보다 그녀들에게는
청정 바다의 징표(徵表), 비린내가 없다
정동진역
- 1997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겨울이 다른 곳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닷가
그 마을에 가면
정동진이라는 억새꽃 같은 간이역이 있다.
계절마다 쓸쓸한 꽃들과 벤치를 내려놓고
가끔 두 칸 열차 가득
조개껍질이 되오버린 몸들을 싣고 떠나는 역.
여기에는 혼자 뒹굴기에 좋은 모래사장이 있고,
해안선을 잡아넣고 끓이는 라면집과
파도를 의자에 앉혀놓고
잔을 주고 받기 좋은 소주집이 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외로운 방들 위에 영롱한 불빛을 다는
아름다운 천정도 볼 수 있다.
강릉에서 20분, 7번 국도를 따라가면
바닷바람에 철쭉 쪽으로 휘어진 소나무 한 그루와
푸른 깃발로 열차를 세우는 역사(驛舍),
같은 그녀를 만날 수 있다.
초가집이 보인다
그 집에는 문이 따로 없다.
그 집에 들어가려면
아무데나 밀면 되고, 또한
아무거나 잡아당기면 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유별난 문이 따로 있는 것 같으면서도
출입문이 따로 없는 집.
야, 이런 집이 아직도 있을 수 있나?
지붕 위론 박넝쿨이 올라가고 있고,
울타리엔 개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집.
방에는 거미가 수없이 세들었지만
아직 향기로운 술독이 익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아랫목에까지 둥지를 틀어올 무렵이면
휘파람으로 달빛을 불러들이고
한 접시의 밤하늘을
술안주로 차려오는 집.
그를 열면, 그런 집이 보인다.
커브가 아름다운 여자
구불구불한 길.
커브가 많은 삶은 슬프다,
라고 생각하며 그녀의 얼굴을 문지르고 있으면
그녀에게선 아름다운 커브가 나온다.
커브가 많은 그녀.
기둥을 자주 수리했던 여자,
얼룩무늬 커튼이 쳐진 여자,
난간이 있는 여자,
일요일이면 혼자 쉬어야 하는 여자,
바이올린 같은 현이 있는 여자,
그래서 한번 더 슬픈 커브를 갖는 그녀.
그러나 그녀의 커브를 몇 굽이 돌다보면
의외로 넓고 푸른 뜰을 만날 수 있다.
그 뜰에서 키우는
비둘기와 양을 만날 수 있고,
날마다 하느님의 들녘으로 나가는
황소 같은 어진 발걸음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뜰을 가득 채워오는 농아들 웃음이
그녀의 어둔 공간을 밝히고
하늘의 별로 반짝여올 때
그녀의 커브는
커브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벼랑을 슬기롭게 돌아나간 커브,
그 커브가 그녀를 향기롭게 한다.
하현달
어느 날 밤 마당가에서 서성이다가
나는 보고 또 보았다.
바람에 날리는 달빛,
돌아오지 못한 할아버지 흰 옷자락을.
잠 못 든 댓잎 소리, 싸락눈도 잘게 뿌리고 있었다.
그때 동네 대밭 머리 위로 떠오르던 하현달.
이윽고 우리 집 신발장 위로
싸늘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어릴적 무서운 그림자의
기억, 무서운 꿈처럼.
사납게 개 짖는 소리를 끌고 달빛이
집 대문을 막 넘어오고 있었다.
받아올 것이 너무 많아서였을까?
그 흔한 싸리울 하나 세우지 않고
주무시던 할아버지가
어느 날 밤
까닭 없는 부름으로 대문을 나섰다
흰 고무신 두 짝만 남기고
맨발로, 맨발로.
그 뒤로
문고리를 꼭꼭 잠그셨다, 할머님은.
등잔불도 아예 치우고 누워만 계시다가
어둠이 되셨다, 할머님은 끝내.
누구의 부름을 받으신 걸까?
등불 없어진 자리처럼 허전한 우리 집.
마당가에 서서 문득 신발장을 다시 올려다 봤을 때
마지막 유언처럼 남아 빛나는 신발.
그 속엔
밝히지 못한 어둠이 있다, 읊조리며 시린 눈을 감았다 뜨면
마당 가득 쳐들어오는 시퍼런 물결. 그 무서운 기억의 달빛 속
싸락눈으로 나는 싸늘하게 깨어 서성이고 있었다.
향기로운 항아리를 하나 빚고 싶다
뚝배기 같은 사람들이 흔한 시대, 나는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뜻이 잘 통하는 한 친구를 만나면
참으로 아름다운 항아리를 하나 빚고 싶다.
혼자로는 만들 수 없고, 둘이 노력해야
아늑한 문양과 향기로운 공간을 세울 수 있는 항아리.
그 보이지 않는 항아리를 빚는 데에
처음부터 손발이 척척 맞아떨어질 리 만무하겠지만
나를 먼저 죽이고, 모난 모서리를 허물면
부드러운 손이
내게서 그에게로 가고, 그에게서도 내게로 오리라.
그 손에는 서로의 아픔과 슬픔이 쥐어져 있어서
문양의 색상과 내용도 다양하게 구성하리라.
그러나, 완성을 위해선 결코 서두르진 않으리라.
어쩌면 그와 나는 이 세상에선 영원히 빚지 못 할지 모른다.
어느 한 사람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그 완성을 이룰지 모른다.
심성이 정말로 진흙처럼 고운 한 친구를 만나면
나는 청자 같은 항아리를 하나 빚고 싶다.
문양이 아름다운 항아리, 향기가 영원히 남는 항아리.
남들이 부러워하는 국보급 항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