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하나

그늘을 가진 사람

달그리매 2006. 7. 16. 02:17

그늘을 가진 사람 / 배한봉


양파는
겨울 한파에 매운맛이 든다고 한다
고통의 위력은
쓸개 빠진 삶을 철들게 하고
세상 보는 눈을 뜨게 한다
훌쩍 봄을 건너뛴 소만 한나절
양파를 뽑는 그의 손길에
툭툭, 삶도 뽑혀 수북이 쌓인다
둥글고 붉은 빛깔의
매운 시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수확한 생각들이 둥글게, 둥글게 굴러가는
묵시록의 양파밭,
많이 헤맸던 일생을 심어도
이젠 시퍼렇게 잘 자라겠다
외로움도 매운맛이 박혀야 알뿌리가 생기고
삶도 그 외로움 품을 줄 안다
마침내 그는
그늘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시집 - 우포늪 왁새 (시와 시학사)

사진 - 네이버 뉴스홈 
 

 

배 한 봉

경남 함안 출생.
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흑조(黑鳥)》(1998), 《우포늪 왁새》(2002) 출간.
계간 <시와 생명> 편집위원, 웹진 <詩鄕>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