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하나

세월의 채찍

달그리매 2006. 7. 16. 19:57

세월의 채찍

 

 

                                         이기철

 



용서하게, 나 시가 좋아서 시속에 들어왔다가
시에 붙들려 한 생 발길 도리지 못한 세월이었네
아침햇빛처럼 새롭게 살고 싶었지만
저녁연기처럼 흐리기만 한 시간이었네
나뭇잎은 언제나 떨어질 것을 예비한 채 피어나고
물은 제 닿을 곳을 미리 알고 흘러간다
돌이켜 보지 말라, 흘러간 어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넝쿨처럼 얽혀서 살아온 날들에
후회의 푯말을 꽂아서는 안 된다
내가 지나온 길, 내 앉았던 자리가
결코 넝마더미가 되어서는 안된다
사랑도 연서도 내가 껴안았던 한 묶음 증오마저도,
시간은 너무 빨리 삶을 시듦에 헌납한다
지금 아름다운 사람은 기억의 선반 위에
어제를 갈무리할 줄 아는 사람이다
돌이켜보면 천둥의 계절은 아름다웠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수백 수천의 세월의 채찍을
중인환시의 광야에 나가 맞고 싶다



*** 산다는 것은 '세월의 채찍'에서 견디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그 과정 속에서 원죄原罪처럼 짊어지고 온
시작詩作의 아픔 또한 만만하지 않은 고통이었습니다.
그러함에도 '할 수만 있다면' 세월의 채찍을 더 맞고
싶다는 갈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현대시 200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