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하나

地上의 길

달그리매 2006. 7. 18. 18:36

地上의 길 / 이기철

 

 

 얼마를 더 살면 여름을 베어다가 가을에 붙여도
 아프지 않을 흰 구름 같은 무심을 배우랴
 내 잠시 눈빛 주면 웃는 꽃들과
 잠 깨어 이마 빛내는 돌들 곁에서
 지금은 햇빛이 댕기보다 곱던 꽃들을 데리고 어둠 속으로 돌
아가는 시간
 絶緣의 아름다움을 나는 여기서 본다

 

 짐을 내려놓아라, 이제 물의 몸이 잠시 쉬어야 한다
 나를 따라 오느라 발이여 고생했다
 내일 나는 너에게 새 구두를 사 주지 않으리
 너는 내 육신의 명령을 거역한 일 없으므로

 

 그러나 나는 가야 한다. 한 번의 가을도 거짓으로 꽃피운 일
없는 들을 지나
 작은 물줄기가 흐름을 시작하는 산을 지나
 아직도 정신의 열대인 내 가혹한 시간 속으로
 나는 가야 한다

 

 내 발 닿는 길 지상의 한 뼘밖에 안 돼
 배추벌레 기어간 葉脈에 불과해도
 내 불러야 할 즈믄 개의 이름들과 목숨들을 위해
 藥든 가슴으로 가야 한다

 

 얼마를 더 가면 제 잎을 잘라 가슴에 꽂아도
 소리하지 않는 풀들의 무심을 배우랴 

 

 - 이것은 가을의 애수와 무상,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정감에 무관한 자연의 초연함을 말한 것으로 크게 보면 전통적인 자연의 정서를 읊은 것이지만 시에 담긴 정서는 남이 쉬이 흉내낼 수 없는, 이기철 고유의 것이다. 그러니만큼 그것은 얻어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발견한 느낌과 깨우침이다.

   시적인 소재로서 자연의 정서 문제는 그것이 너무 일반적인 것이 되기 쉽다는 데 있다. 그러나 위의 구절에서 보듯이, 전통적 정서도 이기철의 개인적인 지각의 예리함 속에 함입되면 새로운 구체성을 얻는 것이다.

   그의 시에는 보다 구체적이고 날카로운 관찰들이 들어 있다.

                                                                                          -해설 김우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