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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승 시연구

달그리매 2006. 7. 18.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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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승 시연구 / 문효치

 

 

[1. 硏究史 槪要 ]
一生을 고독하게 살다 간 詩人 金顯承에 관한 論議는 비교적 적막했던 느낌이다. 그러나 몇몇 評家들에 의하여 단편적이나마 言及된 論議의 흐름을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要約된다.
張伯逸은 金顯承을 전통적 基督敎에 매달려 神의 사랑을 求한 基督敎 詩人으로 規定하고 있다. 金顯承이 基督敎 가정에서 태어나 基督敎 信仰을 가지고 자랐음을 想起하고 「神의 사랑을 염원하여 마지 않는 나머지, 그것을 찾고자 정신적 飛翔의 날개를 펴가며 추구하여 갔다.」고 말했다. 또 金顯承에게 있어서 「孤獨」은 基督敎的 思想을 바탕으로 한 原罪意識의 發露라고 보고 있다.
金海星은 詩 <슬픔>을 해설하면서 原罪意識에서 비롯된 슬픔임을 지적하고 宗敎的 信仰을 詩의 세계에서 수행했음을 말하여 張伯逸의 의견에 同感하고 있다.
崔夏林도 金顯承의 詩의 忠心은 神과 詩로 되어 있다고 하며 일거수 일투족이 神을 향해서 있게 되고 쉬임없이 神을 향해서 意識을 투사하며 존재 자체가 神을 찾아가는 길목에 서 있다고 말했으며, 이와 같은 基督敎的 詩精神은 그의 초·중·말기에 긍해 본질적 변화가 없다고 했다.
金鍾哲도 金顯承을 基督敎的 世界觀의 소유자로 보고, 하나님에 대한 관계 속에서의 인간의 한계를 깊은 實感으로 느끼고 있다고 말하며, 初期詩의 信仰 告白的 태도로부터 後期에 이르러 孤獨에 침잠하는 분명한 사실 자체가 본질적으로는 내면적 同質性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鄭泰榕은 初期詩에 있어서 특별한 감각의 비유법과 諧謔的 분위기를 높이 評 하고 後期詩에 올수록 形而上學的 세계를 소요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詩의 위치에서 보면 後期로 올수록 그 향기를 잃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① 구체적으로 어떤 이미지의 표현인지 알 수 없다. ② 서구적 구조와 표현으로 東洋人으로서는 實感이 가지 않는다. ③ 말의 의미에 치중하여 散文的인 설명이 많다고 지적했다.
洪起三은 初期詩는 基督敎 精神과 모더니즘이라는 양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論하고, 그러나 1964년 이후의 作品을 놓고 볼 때 스스로 神을 버리고자 했다고 말한다. 이 시기에 빈번히 나타나는 「孤獨」은 그러니까 곧 目的이 된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김현승은 스스로 神으로부터 떠나는데 이것은 神과의 완전결별이 아니라 미래에 만나기를 원하는 떼아르·드·샤르뎅의 고뇌와 유사한지도 모른다는 함으로써 김현승이 완전한 無神論的 입장에 서 있지 않았음을 암시하고 있다.
李盛夫는 「神·人間·民族의 探究」라는 題下에서 민족적 로맨티시즘 혹은 민족적 센치멘탈리즘으로 初期詩를 요약하고 해방후에 基督敎的 보편성 위에서 神과 人間의 세계로 눈을 옮겼음을 말했다. 특히 後期詩에 나타나는 「孤獨」에 대하여 金顯承의 최후의 단계이며 永遠으로 이어지는 순간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永遠은 반드시 基督敎的 價値基準에서가 아니고 인간적 思惟로서의 永遠이라고 말했다.
金允植은 우선 「孤獨」을 두 가지로 나누어 孤立者와 單獨者로 나눈다. 그리고 인간된 條件으로서, 특권으로서 인간만이 갖고 있는 고독은 單獨者에 설 때이며 이것이 孤立者를 극복하는 긍정적 적극적 자세라고 주장한다. 이어서 金顯承에 있어서의 고독은 詩「擁護者의 노래」에서는 孤立者로서의 고독이었으나 이것이 무르익어 뒤에는 單獨者로서의 고독에 이르게 된다고 말한다. 金顯承의 고독은 原罪意識에서 根源을 찾을 수 있으나 罪의 의미가 捨象되어 있기 때문에 孤獨과 信仰은 分離되고 말며, 詩集《堅固한 고독》,《絶對 고독》이 설사 기독교적 思惟에서 발단되었다 하더라도 결정적으로 基督敎的인 것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金允植은 김현승의 고독을 信仰과 人間的 感情을 제거한 나 자체, 즉 魂이요, 永遠이라고 보고 있으며 이것을 휴머니즘으로 연결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