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하나

멱라의 길, 1

달그리매 2006. 8. 4. 10:43
    멱라의 길, 1 
                           이기철
     

    걸어가면 지상의 어디에 멱라*가 흐르고 있을 것인데
    나는 갈 수 없네. 산 첩첩 물 중중
    사람이 수자리 보고 짐승의 눈빛 번개쳐
    갈 수 없네
    구강 장강 물 구비치나 언덕 무너뜨리지 않고
    낙타를 탄 상인들은 욕망만큼 수심도 깊어
    이 물가에 사금파리 같은 꿈을 묻었다
    어디서 이소(離騷)** 한 가닥 바람에 불려오면
    내 지상에서 얻은 병 모두 쓸어 저 강물에 띄우겠네

    발목이 시도록 걸어가는 나날은
    차라리 삶의 보석을 갈무리한다고
    상각으로 드는 물들이 뒤를 돌아보며 주절대지만
    문득 신발에 묻은 흙을 보며 멱라의 길이 꿈밖에
    있음을 깨닫고
    혼자 피었다 지는 꽃 한 송이에 눈 닿는 것도
    이승의 인연이라 생각한다


    일생이 아름다워서 아름다운 사람은 없다
    일생이 노역과 상처 아문 자리로 얼룩져 있어도
    상처를 길 들이는 마음 고와서 아름다운 사람은 있다

    때로 삶은 우리의 걸음을 비뚤어지게 하고
    毒묻은 역설을 아름답게 하지만

    멱라 흐르는 물빛이 죽음마저도 되돌려주지는 못한다

    아무도 걸어온 제 발자국 헤아린 자 없어도

    발자국 뒤에 남은 혈흔 쌓여 / 한 해가 되고 일생이 된다 

     

    * 멱라:중국 호남성에 있는 강 이름. 중국 서정시의 효시인 「초사楚辭」를
    시작한 전국 시대 초나라의 굴원이 주위의 참소로 분함을 못이겨 빠져 죽은
    강으로 유명함. 여기서는 내 정신의 강으로 비유됨
    **이소:시름을 만난다는 뜻으로 굴원이 멱라에 빠져 죽을 결심을 하기까지의
    시름을 적은 장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