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하나

청산행(靑山行)

달그리매 2006. 7. 15. 14:45
 

청산행(靑山行)

 

                                              이기철

 

 

 

손 흔들고 떠나 갈 미련은 없다
며칠째 청산(靑山)에 와 발을 푸니
흐리던 산(山)길이 잘 보인다.
상수리 열매를 주우며 인가(人家)를 내려다보고
쓰다 둔 편지 구절과 버린 치솔을 생각한다.
남방(南方)으로 가다 길을 놓치고
두어 번 허우적거리는 여울물
산 아래는 때까치들이 몰려와
모든 야성(野性)을 버리고 들 가운데 순결해진다.
길을 가다가 자주 뒤를 돌아보게 하는
서른 번 다져 두고 서른 번 포기했던 관습(慣習)들.
서(西)쪽 마을을 바라보면 나무들의 잔 숨결처럼
가늘게 흩어지는 저녁 연기가
한 가정의 고민의 양식으로 피어 오르고
생목(生木) 울타리엔 들거미줄
맨살 비비는 돌들과 함께 누워
실로 이 세상을 앓아 보지 않은 것들과 함께 잠들고 싶다.

 

<자유시, 실천문학사, 1983>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일상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에 동화되고 침잠하려는 소망을 담고 있다. 지금 화자가 있는 곳은 청산(靑山), 즉 자연이다. 그러나 그는 일상의 삶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다. 그의 시선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자주 향한다. 지금 그는 청산에 일시적으로 머물러 있는 셈이며, 청산에 완전히 귀의한 삶은 `- 싶다'라는 소망형으로 나타난다.
 1행부터 5행까지는 청산에 와서 변화된 화자의 삶과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별다른 미련없이 일상을 떠나와 청산에 머문 그에게 흐리던 산길이 잘 보이게 된다. 세상의 때를 벗고 맑고 깨끗한 자연의 상태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자연의 일부가 되어 그는 상수리 열매를 줍다가 인가(人家)를 내려다본다. 내려다보는 행위는 대상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나 화자는 사람의 마을을 완전히 떠나지 못하고, `쓰다 둔 편지구절과 버린 치솔'을 생각한다.
6행부터 9행까지 화자의 시선은 다시 자연으로 향한다. 두어 번 허우적거리다 남쪽으로 흘러가는 여울물, 들에 와 야성(野性)을 버리고 순결해진 때까치들. 무위(無爲)로운 자연의 모습이 화자의 시선에 들어온다. 10, 11행에서 화자는 자신의 지나온 삶에 대한 자성(自省)의 순간을 갖는다. 길을 가다가 자주 돌아보게 하는 서른 번 다지고 서른 번 포기했던 관습들은 마음의 지향이 자주 흔들려 고뇌했던 지나온 삶의 궤적을 뜻하고 있다.
 12행부터는 다시 마을이 등장하고 있다. 마을에선 가늘게 흩어지는 저녁연기가 한 가정의 고민의 양식으로 피어오른다. 하루하루 삶을 영위해 가는 일은 실로 눈물겨운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엄숙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로 인해 삶은 늘 고통을 수반한다. 이러한 깨달음이 화자로 하여금, 이 세상을 고통스럽게 앓지 않고도 평화롭게 세상 가운데 존재할 수 있는 무정물(無情物)의 삶을 동경하게 한다. `맨살 비비는 돌들과 함께 누워 / 실로 이 세상을 앓아보지 않은 것들과 함께 잠들고 싶'은 화자의 소망은 유정(有情)한 존재의 고뇌를 모두 떨쳐 버리고 자연에 완전히 흡수되고자 하는 그러한 소망이다. 그리고 이같은 바램이 역설적으로 일상의 삶을 지속하게 하고 고양(高揚)시키는 힘이 되어 준다는 점을 함께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해설: 최동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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