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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독신녀의 슬픈 마지막 시
여성 시인 중 가장 새된 울음으로 기억되는 고정희. 마흔세 살로 타계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정말 일찍 죽은 사람들은 늙지 않은 채, 그저 살아 있는 사람들만 늙나 봅니다. 5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50대 중반, 그러니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거지요. 시인 장만영의 호평을 받았으며, 스물일곱 살 때 박남수의 추천으로 <현대시학>을 통해 시단에 나왔습니다. <새전남> 기자 생활도 했고 <또 하나의 문화> 창간동인이며 한국가정법률상담소 편집부장,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을 역임했습니다. 아시아 종교음악연구소 초청으로 '탈식민지 시와 음악 워크솝'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다가, 그 이듬해 지리산 등정 중 뱀사골에서 폭우 속에 실족하여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유고시 <독신자> 후반부입니다. 아름답지는 않지만 안타깝습니다. 붙잡을래야 붙잡을 수 없는 인연이며 연기이기 때문입니다. 유난히 얼굴이 슬퍼 보이는 고정희는 환절기 때 옷장을 정리하다가 문득 저만치 죽음의 시인이 떠난 지 8일 뒤에 <일간스포츠>에 발표되었습니다. 당시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것이라 해서 세인들의 놀라움을 샀지요. 후배 시인의 말에 따르면, 고정희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이 시가 정서되어 책상 한가운데 반듯이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이 시를 써서 책상 위에 놓고 지리산에 갔다는 이야기가 될 겁니다. 다시 들어가 이 유고시를 책상 한가운데 가지런히 놓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집을 나서서 지리산으로 향했을 테지요. 거리는 조용했고, 왠지 슬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떠나기 전 시인은 남쪽에 비가 많이 온다는 뉴스를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신은 풀과 같고/ 모든 영혼은 풀잎
위의 한 아무개라는 사람을 생각한 구절이고, 4연에 나와 있는 "강물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이어라/ 강아무개를 생각한 구절입니다. "잊어야 할까봐/ 나는 너를 잊어야 할까봐/ 아무리 붙잡아도
소 또 그 뒤에는 김이라는 성이 나옵니다. 이름을 밝히고 있지 않은 이 네 사람은 한씨, 강씨, 노씨, 김씨, 이렇게 성만 표기되어 있습니다. 꼭 이 성들이 필요했는지 의문스럽긴 하지만, 당시 편집진은 원고를 그대로 살리기로 한 모양입니다. 그들은 2연의 "내가 잠시도 잊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달려와/ 지상의 작별을
노래하는 모습 보인다"고 한 그 사람들일지 모릅니다. 고정희의 유고시집 발문에서 "그의 이상 세계는 강 같은 평화의 세계였으며 괴로움의 장작불을 영혼의 횃불로 바꾸는 곳이어서 샘솟는 기쁨을 노래할 수 있는 곳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죽음은 그러나 지리산 폭우 속에 휩쓸려가고 말았습니다. 독신으로 살면서도 항상 밝고 강하고 깨끗했습니다. 가끔 찾아오면 고정희는 저를 동생이라고 불렀고 저에게 고정희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저 남도의 해남, 그곳의 누님 같은 분이었습니다.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입니까. 시집 제목을 바꿉시다" 라고 했지만 시인은 마다하고 "그냥 그렇게 달아줘. 내 생각이 그래" 했던 기억이 어제 같습니다. 우리 모두 먼저 간 사람들의 뒤를 따라가겠지만 어떻게 사람들이 죽을 수 있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정말 죽게 되겠지요. 유고시집의 표제작인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의
일부분입니다. 그녀의 고향 남도 끝 황토 해남에
세워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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