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드 / 허영숙 간단한 자기소개서와 이력을 제출하라 한다 A4 용지 한 장의 분량으로 써라 하니 웃음이 나온다 마흔 해의 이력을 A4 용지 한 장에 어떻게 다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초등학교 졸업이 언제였더라 손가락으로 꼽다가 책상 한 쪽 구석에서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는 먹다만 새우깡 겉봉에 찍힌 바코드를 본다 저 굵고 가느다란 세로 줄에 기록된 것은 새우의 함량이라든가 출고 일자 혹은 숫자로 드러나는 가격에 불과할 뿐 비닐봉지 안에 갇힌 공기의 질량이나 내게 오기까지의 경로를 기록할 수 없다 어느 겨울 날 찬물에 돌미나리를 씻으며 울고 싶었던 이유가 시린 손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한 줄의 좁은 칸에 다 적을 수 없는 것처럼 지나간 나를 이 작은 칸 안에 모두 말 할 수는 없다 길 위에서 버려진 신발이 몇 켤레였는지 밟아온 길을 일으켜 세워 바코드를 만든다 고음으로 내걸렸던 푸른 날의 한 때를 세로로 긋다가 올려다 본 하늘 정오의 햇살이 내 몸의 바코드를 환하게 찍고 간다 ― 2006년 봄《시안》신인상 당선작 중에서 -------------- 허영숙 1965년 경북 포항 출생. 부산여자대학 졸업. 부산 거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