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황순원 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② [중앙일보]
걱정스러울 만큼 뛰어난 재능의 신예 수백 년 된 화석에서 어미의 울음 듣다 최근 2년간 한국 시단엔 벼락과 같은 축복이 내려졌다. 황병승과 김경주. 이 둘의 등장은, 21세기 한국시의 진정한 스타트 라인으로 기록될 법한 일종의 사건이다. 이 둘의 존재는 21세기 한국시가 개척한 신 영토를 고스란히 가리킨다. 2005년이 황병승의 해였다면 2006년은 김경주의 해였다. 황병승이 21세기 들머리 소위 ‘미래파’ 논쟁을 촉발했다면, 김경주는 난해하기 그지없는 요즘 젊은 시의 영역을 한 뼘 더(혹은 더 그 이상) 넓혔다는 평을 듣는다. 황병승(1970년생)은 지난해 미당문학상 최종심에서 최연소 후보였고, 76년생 김경주는 올해 미당문학상 후보 가운데 최연소를 차지했다. 미당문학상이 팔팔 끓는 한국 시의 현장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이 두 시인은 몸소 증명한다. 앞서 인용한 ‘주저흔’은 시인이 고른 추천작이다. “다소 어렵더라도 ‘주저흔’을 실어달라”고 시인은 말했다. 작품은, 김경주 특유의 서정과 시학 나아가 김경주의 특징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시인은 살아있는 모든 것의 울음소리는 다르다고 믿는다. 이미 그는 ‘멸종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종의 울음소리가 사라져간다는 것이다 나는 멸종하지 않을 것이다’(‘우주로 날아가는 방 5’부분)라고 첫 시집에서 쓴 적 있다. 이번에 시인은 그 울음소리의 기원을 추적한다. 수백 년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 끝에 시인은 추적의 결과를 타이핑한다. ‘바람은 죽으려 한 적이 있다’. 울음소리와 바람소리의 이미지가 묘하게 겹쳐지고, 그 위에 주저흔(Hesitation marks, 자살하기 직전 머뭇거린 흔적)’의 이미지가 다시 포개진다. 똑 떨어지게 설명할 순 없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수백 년의 역사를 품고 있지만 결국 시인이 귀속되는 건 ‘똑같은 울음소리를 가진’ 어미다. 문법을 어기고 맞춤법을 무시하는 시적 전략이 드러나지만 시를 지배하는 정서는 삶을 향한 어떠한 절실함이다. 깊은 사색의 흔적이 느껴지면서도 ‘바람은 죽으려 한 적이 있다’와 같은 표현은 입안을 달콤하게 감돈다. 이광호 예심위원이 “요즘 젊은 시인의 시 중에서 가장 음역이 넓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마디로 정리해서 김경주는, 한 마디로 정리하기 힘든 시인이다. 김경주는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2005년 대산창작기금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이란 찬사를 들으며 문단에 나타났다.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는 “한국어로 씌어진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한 권이 될 것이다”(비평가 권혁웅)란 화려한 표사를 달고 나왔다. 그리고 1년 뒤, 김경주의 첫 시집은 이례적으로 1만 부가 넘게 팔렸다. ‘시집 1만 부 판매’보다 훨씬 이례적인 기록인 ‘시집 10쇄 인쇄’도 연내 가능할 것이란 예상이다. 21세기 벽두, 김경주는 존재만으로 하나의 사건인 시인이다. 글=손민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달려라 아비’ 이은 ‘칼 잡아라 어미’ 이야기 남성에 의해 훼손되지 않은 여성성 첫 제시
‘칼자국’이 황순원문학상 최종심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서 김애란이 처음 꺼낸 말이다. 작가의 말마따나 ‘칼자국’은 그의 대표작 ‘달려라, 아비’의 대척점에 놓여 있다. 김애란은 ‘칼자국’에서 처음으로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이번엔 ‘칼 잡아라, 어미’다”(김미현 심사위원), “‘달려라, 아비’가 김애란 문학의 절반을 보여줬다면 이 작품은 그 나머지 절반이다. 아비가 달릴 때 어미는 칼 들고 국수 집을 했다는 것”(김동식 위원)이란 평이 예심 중간에 쏟아진 건 이 때문이었다. 소설에 따르면 김애란의 어머니는 영락없는 억척 어멈이다. 어미의 얘기는, 칼에서 시작해 어미가 칼질해 만드는 음식을 거치고 나아가 칼질로 먹여 키운 딸인 나와의 관계로까지 이어진다. “어머니의 칼끝에는, 평생 누군가를 거둬 먹인 사람의 무심함이 서려있다”는 식이다. 김미현 위원은 “음식의 체험화는 박완서 선생의 본령인데, 김애란은 음식에서 칼로 이동했고 무엇보다 칼의 금속성을 생명성으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김애란이 그린 어머니 상은 ‘달려라, 아비’에서의 아버지처럼 흥미롭고 유쾌하다. 그의 아버지가 철없는 친구 같았다면, 어머니는 건강하고 활달하고 질기다. 자식 위해 한몸 희생하는 전통적 어머니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쉼없이 칼질을 해 자식을 거두지만 한편으로는 장난도 치고 노름도 한다. 그래서 김애란에게 모녀 관계는 애증이나 아픔보다는 우정에 더 가깝다. 작가는 “우리 모두에게 어머니는 사건이 아니라 정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달려라, 아비’를 즐겁게 썼다면 ‘칼자국’은 그 이상으로 행복하게 썼다”고 덧붙였다. 그 행복감이 잘 드러나는 일화가 있다. “소설을 다 쓰고 난 뒤 충남 서산 시골집에 내려가 어머니께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드렸다. 나는 엎드린 채, 어머니는 가만히 누워 간혹 낄낄대기도 하면서…. 내 소설을 소리 내서 끝까지 읽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유머가 예전같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작가는 개의치않는 표정이었다. “처음 책을 냈을 때 독자들과 소개팅하는 기분이었다면 지금은 독자와 연애를 하는 느낌이다. 관계가 멀수록 농담을 많이 하는데, 농담만 하는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없지 않을까.” 김애란이 아버지 얘기를 처음 꺼냈던 2년 전, 그는 새로운 차원의 아버지 서사를 한국문학에 선보였다. 그리고 오늘, 김애란은 이제 어머니를 말한다. 그러자 바로 “남성에 의해 훼손되지 않는 새로운 차원의 여성성이 구현된 작품”(손정수 위원)이란 해설이 뒤를 잇는다. 바로 이 지점에 황순원문학상 최연소 후보 김애란의 매력이 있다. 권근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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