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하나

애교

달그리매 2007. 9. 18. 22:08

    애교 / 유홍준



    열 번도 더 바꿀 수 있는 것이 종교
    봐, 열한 살 딸아이가
    내 앞에서
    애교를 떠네
    이빨 빼는 게 무서워
    덧니 두 개가 난 딸아이가
    방실방실 잡티 하나도 없는 웃음을 짓네
    아아, 예쁘고도 예쁜 내 애교의 교주
    이제 누가 뭐래도 나의 신앙은 애교라네
    애교라면 나는 사족을 못 쓴다네
    애교에 이러쿵저러쿵 시비를 거는 인간은 나쁜인간
    애교 마다하는 인간이 어딨어 애교에 안 넘어갈 인간은 또 어딨어
    따지고 보니 신자 수가 가장 많은 것이 애교라네
    그러니 나 개종을 안 할 방법이 없다네
    아내 몰래 가끔 만나던 그 여자도 애교가 만점이었다네
    여차하면 그때 벌써 난 사이비 애교도가 될 뻔 했다네
    하여간 애교도 종파가 가지가지
    그러나 그 어떤 애교도 내 딸아이의 애교와는 비교대상이 아니라네
    정통중의 정통, 그것이 내 딸아이의 애교라네
    오늘도 나 퇴근길에 전화를 받네
    아이스크림 사오라는 우리 교주님의 전화,
    아암, 사 가지 사 가고 말고
    자진해서 네 학비를 위해 십일조도 하고
    자진해서 네 구두 네 옷을 위해 감사헌금이며 건축헌금도 드리고 말고

    <황해문화> 2007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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