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교 / 유홍준
열 번도 더 바꿀 수 있는 것이 종교
봐, 열한 살 딸아이가
내 앞에서
애교를 떠네
이빨 빼는 게 무서워
덧니 두 개가 난 딸아이가
방실방실 잡티 하나도 없는 웃음을 짓네
아아, 예쁘고도 예쁜 내 애교의 교주
이제 누가 뭐래도 나의 신앙은 애교라네
애교라면 나는 사족을 못 쓴다네
애교에 이러쿵저러쿵 시비를 거는 인간은 나쁜인간
애교 마다하는 인간이 어딨어 애교에 안 넘어갈 인간은 또 어딨어
따지고 보니 신자 수가 가장 많은 것이 애교라네
그러니 나 개종을 안 할 방법이 없다네
아내 몰래 가끔 만나던 그 여자도 애교가 만점이었다네
여차하면 그때 벌써 난 사이비 애교도가 될 뻔 했다네
하여간 애교도 종파가 가지가지
그러나 그 어떤 애교도 내 딸아이의 애교와는 비교대상이 아니라네
정통중의 정통, 그것이 내 딸아이의 애교라네
오늘도 나 퇴근길에 전화를 받네
아이스크림 사오라는 우리 교주님의 전화,
아암, 사 가지 사 가고 말고
자진해서 네 학비를 위해 십일조도 하고
자진해서 네 구두 네 옷을 위해 감사헌금이며 건축헌금도 드리고 말고
<황해문화> 2007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