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하나

모자를 쓴 태양

달그리매 2007. 11. 23. 09:42

    모자를 쓴 태양 / 최승호

     

     

    칸나꽃 수만 송이를 토해내던 태양이
    여기서는 돌덩어리를 굽고 있을 뿐이다
    두개골이 뜨겁다
    어딘가에 바삭바삭한 미라들이 있을 것이다
    큰 모자를 쓰고 올 걸 그랬다
    눈이 부시다
    칸나!
    태양에 바치는 숫처녀의 심장처럼
    붉은 칸나를 본 게 지난 해 여름이었나
    정말 장미와 비교할 수 없는
    크고 싱싱한 심장 같은 꽃이었다
    두근거리는 대지 위의 초목들과
    나비들의 향기
    그러나 이 물 마른 땅엔
    번쩍거리며 누워있는 모래들이 있을 뿐이다
    물을 벌떡벌떡 들이킨다
    태양의 모자는 녹아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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