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를 쓴 태양 / 최승호
칸나꽃 수만 송이를 토해내던 태양이
여기서는 돌덩어리를 굽고 있을 뿐이다
두개골이 뜨겁다
어딘가에 바삭바삭한 미라들이 있을 것이다
큰 모자를 쓰고 올 걸 그랬다
눈이 부시다
칸나!
태양에 바치는 숫처녀의 심장처럼
붉은 칸나를 본 게 지난 해 여름이었나
정말 장미와 비교할 수 없는
크고 싱싱한 심장 같은 꽃이었다
두근거리는 대지 위의 초목들과
나비들의 향기
그러나 이 물 마른 땅엔
번쩍거리며 누워있는 모래들이 있을 뿐이다
물을 벌떡벌떡 들이킨다
태양의 모자는 녹아버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