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관하여
김영남
나는 위보다는 밑을 사랑한다
밑이 큰 나무, 밑이 큰 그릇, 밑이 큰
여자......
그 탄탄한 밑동을 사랑한다
위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밑동도 다 넓은 것은 아니지만
참나무처럼 튼튼한
사람,
그 사람 밑을 내려가보면
넓은 뿌리가 바닥을
악착같이 끌어안고 있다
밑을 잘 다지고 가꾸는
사람들......
우리도 밑을
논밭처럼 잘 일궈야 똑바로 설 수 있다
가로수처럼 확실한 밑을 믿고
대로를 당당하게 걸을 수
있다
거리에서 명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밑이 구린 것들, 밑이 썩은 것들은
내일로 얼굴을 내밀 수 없고
옆 사람에게도
가지를 칠 수 없다
나는 밑을 사랑한다
밑이 넒은 말, 밑이 넓은 행동, 밑이 넓은 일......
그 근본을
사랑한다
근본이 없어도
근본을 이루려는 아랫도리를 사랑한다
-시집 [정동진 역]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