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하나

백석 시인의 대표작

달그리매 2006. 7. 22. 01:24


(1) 여우난골

정주성
여우난골족
여우난골
모닥불
오금덩이라는 곳


(2) 가을 아침, 산

추일산조
청시
산비
쓸쓸한 길
여승
황일
남향


(3)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팔원
적막강산



(1) 여우난골

정주성 ( 定州城 )

 
산턱 원두막은 비었나 불빛이 외롭다
헝겊 심지에 아주까리 기름의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잠자리 조을든 무너진 성(城)터
반딧불이 난다 파란 혼(魂)들 같다
어데서 말 있는 듯이 크다란 산(山)새 한 마리 어두운 골짜기로 난다
 
헐리다 남은 성문(城門)이
한울빛간이 훤하다
날이 밝으면 또 메기수염의 늙은이가 청배를 팔러 올 것이다



아주까리 : 피마자, 씨는 기름을 짜는 대극과(大戟科)의 일년생풀.
쪼는 : 기름이 타 들어가는.
한울 : 하늘.
청배 : 청배나무의 열매.


이 시는 백석이 1935년 8월 31일, 조선일보를 통해서 처음으로 발표한 작품이다. 그러니까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자라온 고향 정주의 다 허물어져 가는, 그러나 이 고장의 명소라고 하는 정주성을 소재로 삼은 시이다. 이 시에서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시인의 첫 작품이지만 이미지를 통한 시적 감수성이 퍽 반짝인다는 점일 것이다. 이제는 한갓 역사의 유물로밖에는 인식되지 않는 무너진 성터와, 헐리다 남은 문이 있는 산 중턱의 원두막은 사람이 없는지 불빛이 외롭다. 고요한 밤이기 때문에 아주까리 기름의 쪼는 소리마저 들리는 듯하다. 불빛과 기름 타는 소리의 시각과 청각 이미지가 다 허물어진 성터의 파란 혼처럼 나는 반딧불과 어울려 무상함과 고독감마저 느끼게 하는 시이다.
이미지즘의 시가 사물시(physical poetry)의 형태로 외관적 풍경의 감각을 수놓는 데 열중한 것이 1930년대 시단의 풍조였다. 정지용의 시를 감정의 절제라고 평가한 것도 정지용의 이미지즘이 바로 이러한 사물시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석은 마지막 연에서 하늘빛처럼 훤한 헐리다 남은 성문에 메기 수염의 늙은이를 등장시킨다. 이 노인은 결코 돈 많은 사람일 수가 없다. 청배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가난한 사람일 것이다. 단순한 이미지의 풍경화가 아닌, 늙은 청배 장수를 그 배경 속에 등장시켜 떠오르는 삶의 찐득한 땀냄새는 이 시의 깊이에 일조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우난골족(族)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적거리는 하루
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
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李女)
열여섯에 사십(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
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려(承女)
아들 승(承)동이
육십리(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든 말 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洪)동이 작은 홍(洪)동이
배나무접을 잘 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엄매 사춘누
이 사춘 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뽂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
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
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
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
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
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
닭이 몇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 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
틈으로 장지 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벌 : 매우 넓고 평평한 땅
고무 : 고모, 아버지의 누이
매감탕 : 엿을 고아낸 솥을 가셔낸 물. 혹은 메주를 쑤어낸 솥에 남아 있는 진한 갈색의 물.
토방돌 : 집채의 낙수 고랑 안쪽으로 돌려가며 놓은 돌. 섬돌.
오리치 : 평북지방의 토속적인 사냥용구로 동그란 갈고리 모양으로 된 야생오리를 잡는 도구.
안간 : 안방.
저녁술 : 저녁밥. 저녁숟갈.
숨굴막질 : 숨바꼭질.
아릇간 : 아랫방.
조아질 : 부질없이 이것저것 집적거리며 해찰을 부리는 일. 평안도에서는 아이들의 공기놀이를 이렇게 부르기도 함.
쌈방이 : 주사위
바리깨돌림 : 주발 뚜껑을 돌리며 노는 아동들의 유희.
호박떼기 : 아이들의 놀이
제비손이구손이 : 다리를 마주끼고 손으로 다리를 차례로 세며, "한알 때 두알 때 상사네 네비 오드득 뽀드득 제비손이 구손이 종제비 빠땅" 이라 부르는 유희
화디 : 등경. 등경걸이. 나무나 놋쇠 같은 것으로 촛대 비슷하게 만든 등잔을 얹어 놓은 기구.
사기방등 : 흙으로 빚어서 구운 방에서 켜는 등.
홍게닭 : 새벽닭.
텅납새 : 턴납새. 처마의 안 쪽 지붕이 도리에 얹힌 부분. 부고장 같은 것이 오면 방 안에 들이기를 꺼려 이곳에 끼워 넣는 풍속이 있었음
동세 : 동서(同壻).
무이징게국 : 징거미(민물새우)에 무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끓인 국.



☞ 백석 우리문화의 원형탐구와 떠돌이 삶 / 박혜숙/ 건국대학교출판부 p.61~62

이 작품의 배경이되는 여우난골은 백석의 일가 친척이 모여 사는 마을이름이다. 이 여우난골에 살고있는 백석의 집안이 명절 때 한데 모여 먹고 놀며 화목함을 다지는 정경이 어린아이의 눈을통해 형상화 되었다. 백석은 「여우난골」이라는 시도 썼는데 그곳은 다분히 비문명적인, 그러나 아름답고 포근한 곳으로 그려졌다. 마을 이름 자체부터가 재미있는 전설이라도 간직되어 있음직한 이곳은, 그러기에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그곳에서 쓰이는 언어도 외부 세계의 때를 입지않은 듯한 진한 토속성의 체취가 풍겨난다.
처음 부모를 따라서 명절에 할아버지 댁을 찾아가는 작품속의 화자는 매우 들떠있다. 개까지도 따라다니는 아이들 세계의 들뜬 심정이 동화적으로 느껴진다. 아이는 들뜰 수밖에 없다. 제 또래의 친척 아이들과 모여 밖에서는 쥐잡이, 숨바꼭질, 말타기 등의 놀이를 신나게 할 수 있고, 밤이 되면 집 안에서 쌈방이, 바리깨돌림, 호박떼기 등의 온갖 놀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갖가지 명절 음식들이 얼마든지 있으니 아이는 더더욱 좋은것이다.
아이의 눈으로 관찰된 친척들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얼굴에 별자국 솜솜 난(아마도 곰보일 것이다) 말수, 하루에 베 한 필 짠다는 재주꾼 新里 고무, 늙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살빛이 매감탕 같은 土山 고무, 자주 눈물을 보이던 코끝이 빨간 큰 골 고무, 그리고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삼촌은 이미 어른이 되어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는 시인에게 각인되어 있는 여우난골族의 초상화이다. 이 초상화를 통해서 느껴지는 것은 이들 집안이 그 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크게 내세울 것도 없지만 크게 가난하지도 않은 사람들이며, 친족간의 전통적 규범을 간직하면서 당시 급작스레 변화되어 가는 서구적 물결에 휩쓸림이 없는 사람들이다.
백석의 『사슴』에 나오는 이와 같은 전통적 세계의 시들은 임화가 지적한 시골뜨기의 시도, 오장환이 말한 유복한 어린시절의 회고시도, 아니면 시대적 조류를 퇴행한 시도 아니다. 그것은 퇴색되어 가는 공동체적 우리들 삶의 근원을 재확인한 것이자, 말살되어 가던 모국어에 대한 문학적 실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아래글은 백석 질의 응답 게시판에 소개된 여우난곬족 관련글 일부입니다... 함께 살펴보세요...

☞ 이동순교수

말수와 같이 눈도 껌뻑거리는

여기에서 <말수와 같이>는 <말(담화)의 숫자와 같이>, 즉 <말할 때마다>가 맞습니다. 말의 숫자와 꼭 같이 눈을 껌뻑거린다는 뜻이지요. 마치 사람의 이름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아닙니다.


☞ 박하향기 ( 백석카페 )

바다님의 글 잘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텍스트의 수식관계로 보면 말수도 눈을 껌벅거리고 신리고무도 눈을 껌벅거리는 것으로 봐야 되겠네요.
그런데 시에 등장하는 친지의 인적사항이 다 드러나고 있는데 말수에 관해서만은 누구인지가 나와 있지 않군요.저는 시의 전체적 흐름으로 보아서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한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까지가 신리고모에 걸리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님의 글이 공부중인 제게는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참고로 이숭원교수가 쓴 글 중에서 일부를 옮겨 보겠습니다.

2연에 나오는 인물에 대해서는 송준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시인 백석 일대기 1"(지나, 1994)이 이해에 도움을 준다. 이 책은 백석의 부친대의 전기적 자료를 상세히 조사하여 결혼과 생몰(生沒) 관계를 밝혀 놓았는데(81-83쪽), 그것에 의하면 이 부분에 나오는 내용은 모두 백석이 어릴 때 보았던 실제의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신리에 사는 고모는 얼굴이 좀 얽었으며 말할 때마다 눈을 껌벅거리는 버릇이 있는데 이러한 신체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베 한 필을 짤 정도로 부지런하고 근면하다. (한국 현대시 감상론, 집문당, 1996,130-131쪽).


☞ 안개바다 ( 백석카페 )

말을 할 때마다 눈을 껌뻑거리는 해석이 맞습니다. 그 수식관계와 띄어쓰기를 보니 말수와같이눈도껌벅거리는 이라고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해석하면 말을 하는 횟수만큼 눈도껌뻑거리는 이라는 해독이 정확합니다.


여우난골

박을 삶는 집
할아버지와 손자가 오른 지붕 위에 한울빛이 진초록이다
우물의 물이 쓸 것만 같다

마을에서는 삼굿을 하는날
건넌마을서 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문이 왔다

노란 싸리잎이 한불 깔린 토방에 햇츩방석을 깔고
나는 호박떡을 맛있게도 먹었다

어치라는 山새느 벌배 먹어 고흡다는 골에서 돌배 먹고 아픈배를
아이들은 떨배 먹고 나었다고 하였다



삼굿 : 삼(大麻)을 벗기기 위하여 구덩이에 쪄내는 일. 구덩이를 파고 그 바닥에 솥을 걸기도 하지만, 솥 대신 돌무더기를 달군 다음 그 위에 풀을 한 겹 깔고 삼단을 세우고 위에서 물을 부어 넣어, 그 뜨거운 증기로 삼 껍질을 익히게 함.
한불 : 상당히 많은 것들이 한 표면을 덮고 있는 상태.
토방 : 마루를 놓을 수 있는 처마 밑의 땅.
햇츨방석 : 햇칡방석. 그 해에 새로 나온 칡덩굴을 엮어 만든 방석.
어치 : 까마귀과의 새. 몸길이 34cm. 비둘기보다 조금 작으며 몸은 포도색, 머리털은 적갈색임. 목소리가 고우며 다른 새들의 흉내를 잘냄.
벌배 : 산과 들에서 저절로 나는 야생 배.
열배 : 아직 채 익지 아니한 풋배.



☞ 백석 우리문화의 원형탐구와 떠돌이 삶 / 박혜숙/ 건국
대학교출판부 pp.63~64

백석의 시 「여우난골은族」은 이 고장에 사는 시인의 일가친척에 대한 유대감을, 명절날의 들뜬 분위기에서 꽤나 왁자지껄한 어조를 지닌 채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여우난골족이 살아가고 있는 마을인, ‘여우난골’은 퍽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깔려 있다. 특히 1연에서 할아버지와 손자가 박을 따기 위해 오른 지붕 위의 진초록빛 가을 하늘은 너무 맑고 푸르러서, 오히려 우물물이 쓸 것 같다는 여우난골의 가을 풍경이 하나의 그림처럼 떠오른다.
삼굿 (삼을 벗기기 위해 구덩이를 파고 열을 가해서뜨거운 증기로 삼 껍질을 익히는 일 / 실제로 굿판을 벌이는 것도 아닌데, 길쌈노동의 가장 중요한 대목인 삼삼기를 ‘삼굿’이라고 한 것은, 반드시 ‘굿’이라는 말이 무속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닌 민중생활의 전형적인 생활 양식을 의미하는 범칭어(凡稱語)였기 때문이다. 줄다리기를 줄다리기굿 이라고 부르는 등으로 알 수 있다. 주강현, 『굿의 사회사』, 웅진출판사, 1993, pp. 20~21.)을 하던 날, 건넛마을 사람이 몰에 빠져 죽었다는 소문은 하루하루 큰 변화없이, 별다른 이야깃거리 없이 살아가는 시골 사람들에게는 놀랄 만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놀라운 얘깃거리도 잠시일 뿐, 어린아이는 햇칡으로 만든 방석을 깔고 호박떡을 먹기에 열중이다. 삶의 뼈아픈 고뇌도, 가난함의 주름살도 혹은 인간이 모여 살면서 응당 터져나올 만한 다툼의 세계도 보이지 않는 여우난골의 이러한 이야기는 자연의 원리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소박함이 담겨져 있다. 마지막 연의 어치라는 산새의 벌배, 돌배, 알픈 배(아픈배), 열배(덜 익은 풋배)의 이야기는 이런 소박한 세계에 응당 있을 만한, 마치 이 마을의 이름 여우난골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설화적 세계이며, 문명세계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 시는 더 아름답고 신비스럽게까지도 생각되는지 모르겠다.



모닥불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머리카락도 헌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수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 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한 이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갓신창 : 부서진 갓에서 나온, 말총으로 된 질긴 끈의 한 종류.
개니빠디 : 개의 이빨.
재당 : 서당의 주인. 또는 향촌의 최고 어른.
초시 : 초시에 합격한 사람으로 늙은 양반을 이르는 말.
갓사둔 : 새사돈.
붓장사 : 붓을 파는 직업의 장사꾼.
몽둥발이 : 손발이 불에 타버려 몸뚱아리만 남은 상태의 물건.


여기에서 모닥불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어느 곳에든지 버려져 있는 소똥, 개이빨, 가락잎 등 하찮은 물건들도 모여서 불꽃을 피워 내고, 불꽃 앞에 빙 둘러앉은 사람들은 지위 고하가 없는 한 존재로서의 의미를 띤다. 그러기에 초시, 문장(門長)늙은이와 같은 어른이나, 머슴이 함께 모닥불을 쪼일 수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와 손자, 나그네와 주인의 사이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는 큰 개나 강아지까지도 함께 어울린다.
이 시는 백석이 「여우난골族」에서 보여주었던일가 친족간의 화합과 그들 공동체간 삶의 차원을 넘어서서, 만물 화합의 더 높은 정신을 품고 있다. 불꽃의 따뜻한 열기처럼 훈훈한 인정이 감도는 모닥불 앞에 서 있던 천애 고아가 된 할아버지의 슬픈 이야기 안에는 공동체적 삶속에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지 않은 속 깊은 이야기가 마지막 연에 숨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적 삶으로부터 울거져 나온 만물 화합의 정신은 그의 시 「연자간」에서, “달빛도 거지도 도적개도 모다 즐겁다 // 풍구재도 얼럭소도 쇠드랑볕도 모다 즐겁다”라고 표현되며, “대들보 우에 베틀도 채일도 토리개 모도들 편안하니 // 구석구석 후치도 보십도 소시랑도 모도들 편안하니”라고 한다. 결국 즐겁고 편안한 것, 이것은 만물 화합의 정신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다.

풍구재 : 곡물의 쭉정이 등 쓸모없는 것을 날려보내는 기구
쇠드랑볕 : 쇠스랑볕. 쇠스랑 모양의 창살로 들어와 비치는 볕
토리개 : 씨아. 목화의 씨를 빼는 기구
후치 : 훌칭이. 쟁기로 갈아 놓은 논밭에 골을 타거나 흙이 얕은 논밭을 가는 데 쓰는 농기구
보십 : 보습. 농기구의 일종



오금덩이라는 곳


어스름저녁 국수당 돌각담의 수무나무 가지에 녀귀의 탱을 걸고 나물매 갖추어놓고 비난수를 하는 젊은 새악시들
― 잘 먹고 가라 서리 서리 물러가라 네 소원 풀었으니 다시 침노 말아라

벌개늪녘에서 바리깨를 뚜드리는 쇳소리가 나면 누가 눈을 앓어서 부증이 나서 찰거마리를 부르는 것이다
마을에서는 피성한 눈슭에 저린 팔다리에 거마리를 붙인다

여우가 우는 밤이면
잠 없는 노친네들은 일어나 팥을 깔이며 방뇨를 한다
여우가 주둥이를 향하고 우는 집에서는 다음날 으레히 흉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녀귀 : 여귀(勵). 못된 돌림병으로 죽은 사람의 귀신. 제사를 받지 못하는 귀신
탱 : 탱화(幀畵). 벽에 걸도록 그린 불상(佛像)그림
비난수 : 무당이나 소경이 귀신에게 비는 말이나 행위
벌개늪 : 뻘건 빛깔의 이끼가 덮여 있는 오래된 늪
눈숨 : 눈시울. 눈의 언저리의 속눈썹이 난 곳


백석이 자신의 고향에 대한 시에서 가장 즐겨 다룬 것은 샤머니즘적 세계이다. 그렇지만 그의 고향 정주는 기독교가 일찍부터 들어왔으며, 이 고장의 대표적 교육기관인 오산학교도 기독교계의 학교였다. 더군다나 일본에서 다닌 청산학원도 기독교 계통의 학교였다. 대학 2학년 때는 학교내의 교회인 청학원교회(淸學院敎會)에서 세례를 받기까지 했다.
그의 시 「여우난골族」에는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土山고무”라는 말이 있는데 아마도 기독교인이 집단으로 모여 살던 마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적 환경과 더불어 기독교계 학교에서 공부를 했지만 백석의 어린 시절을 지배하던 종교적 환경은 사머니즘이었다. 백석의 시 「가즈랑집」을 보면, 그는 태어날 때부터 신(神)딸인, 가즈랑집 할머니가 모시는 대감신에게 수양(收養아들)을 들였으며, 아랫 마을에서는 애기무당이 작두를 타며 굿을 하는 때가 많은(「三房」)곳이었다.
이 작품 「오금덩이라는 곳」도 그가 살던 곳이 얼마나 샤머니즘적인 세계였는가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물론 그 시대의 사람들이 누리던 보편적인 환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으로서 백석은 당시 활약하고 있던 1930년대의 다른 시인들과는 달리 이와 같은 전통, 토속적인 세계를 주저 없이 그려낸다. 그가그 흔하게 결성되어 문학적 유파를 형성하던 문학 동호회조차 한 번도 가담하지 않고, 유행 조류와 관계없이 이런 독자적 세계를 일구어낸 것은 민족 정서에 대한 남다른 집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일본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던 그가 당시 유행했던 모더니즘을 몰랐을 리 없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시에서 이미지적 요소가 들어 있는 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자세나, 형식에 대한 실험적 의도 등을 간파했기 때문에 김기림도 백석의 시에 대하여 모더니티를 품고 있다고 했던 것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오금덩이라는 곳은 온통 속신(俗神)적인 샤머니즘의 세계이다. 국수당(서낭당) 돌각담의 나무에 귀신의 얼굴을 그려 놓고 나물 등의 음식을 차린 후 귀신이 다시는 침노하지 말라고 빌어대는 젊은 새악시들을 자주 볼 수 있느 곳이다. 바리깨(주발뚜껑)를 두드리며 피 멍든 눈가에, 저린 팔다리에 거머리를 붙이면 낫는다고 믿는 곳이다. 여우가 우는 밤, 노인들의 방뇨 소리가 멍석 위에 깔아논 팥을 고무래로 이리저리 쓸어댈 때처럼 요란스러이 들리는 곳이다. 여우가 주둥이를 향해 우는 집에는 다음날 흉사가 있다는 무서운 얘기가 나도는 곳, 이런 곳이 ‘오금덩이라는 곳’이다. 이런 시를 읽으면 독자들은 잊혀져 가고 있는 세계, 그러나 우리 삶의 원천이 되는 문화적 원형의 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그 뿌리의 양분을 통해서만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도.



(2) 가을 아침, 산


추일산조(秋日山朝)


아침볕에 섶구슬이 한가로이 익는 골짝에서 꿩은 울
어 산(山)울림과 장난을 한다

산(山)마루를 탄 사람들은 새꾼들인가
파아란 한울에 떨어질 것같아
웃음소리가 더러 산(山) 밑까지 들린다

순례(巡禮)중이 산(山)을 올라간다
어젯밤은 이 산(山)절에 재(齋)가 들었다

무리돌이 굴러나리는 건 중의 발굼치에선가



섶구슬 : 풀섶의 구슬, 즉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 높은 산 골짜기나 등성이에 열려 있는 구슬댕댕이 나무의 작은 열매
새꾼 : 나무꾼.
무리돌 : 많은 돌.



청시(靑枾)



별 많은 밤
하누바람이 불어서
푸른 감이 떨어진다 개가 즞는다


청시 : 아직 익지 않아서 색깔이 푸른 밤
하누바람 : 하늬바람. 농가나 어촌에서 북서풍을 이르는 말임. 강원도에서는 서풍을 뜻함



산(山) 비



山뽕잎에 빗방울이 친다
멧비둘기가 난다
나무등걸에서 자벌기가 고개를 들었다 멧비둘기켠을 본다

자벌기 : 자벌레
쓸쓸한 길



거적장사 하나 山뒷옆 비탈을 오른다
아― 따르는 사람도 없이 쓸쓸한 쓸쓸한 길이다
山가마귀만 울며 날고
도적갠가 개 하나 어정어정 따라간다
이스라치전이 드나 머루전이 드나
수리취 땅버들의 하이냔 복이 서러웁다
뚜물같이 흐린 날 東風이 설렌다


이스라치 : 산앵두
수리취 : 엉거시과에 속하는 다년초로 야산에 자생하며 어린잎은 식용함
복 : 수리취, 땅버들 따위의 겉을 둘러싸고 있는 하얀 솜털



여 승 ( 女 僧 )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平安道)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山) 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山)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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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취 : 참치나물.
금덤판 : 금을 캐거나 파는 산골의 장소 또는 그곳에서 간이 식료품 등 잡품을 파는 곳.
섶벌 : 울타리 옆에 놓아 친느 벌통에서 꿀을 따 모으려고 분주히 드나드는 재래종 꿀벌.
머리오리 : 머리카락



황 일 (黃 日)


한 십리(十里) 더 가면 절간이 있을 듯한 마을이다. 낮 기울은
볕이 장글장글하니 따사하다. 흙은 젖이 커서 살같이 깨서 이지
랑이 낀 속이 안타까운가 보다. 뒤울 안에 복사꽃 핀 집엔 아무
도 없나 보다. 뷔인 집에 꿩이 날어와 다니나 보다. 울밖 늙은 들
매나무에 튀튀새 한불 앉었다. 흰구름 따러가며 딱장벌레 잡다가
연두빛 닢새가 좋아 올라왔나 보다. 밭머리에도 복사꽃 피였다.
새악시도 피였다. 새악시 복사꽃이다. 복사꽃 새악시다. 어데서
송아지 매―하고 운다. 골갯논드렁에서 미나리 밟고 서서운다.
복사나무 아래 가 흙장난하며 놀지 왜 우노. 자개밭둑에 엄지 어
데 안 가고 누었다. 아릇동리선가 말 웃는 소리 무서운가, 아릇동
리 망아지 네 소리 무서울라. 담모도리 바윗잔등에 다람쥐 해바
라기하다 조은다. 토끼잠 한잠 자고 나서 세수한다. 흰구름 건넌
산으로 가는 길에 복사꽃 바라노라 섰다. 다람쥐 건넌산 보고 부
르는 푸념이 간지럽다.

저기는 그늘 그늘 여기는 챙챙―
저기는 그늘 그늘 여기는 챙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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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매나무 : 산딸나무. 층층나무과에 속하며, 정원수로 심고 열매는 식용함.
튀튀새 : 티티새. 자빠귀. 개똥지빠귀. 10~11월에 데를 지어 도래하여 겨울에는
낮은 산, 평지, 밭, 풀밭 등에서 살며 다른 새의 울음소리를 흉내냄.
한불 : 상당히 많은 것들이 한 표면을 덮고 있는 상태.
아릇동리 : 아랫동네.
담모도리 : 담 모서리.



남향(南鄕) ― 물닭의 소리 4


푸른 바닷가의 하이얀 하이얀 길이다

아이들은 늘늘히 청대나무말을 몰고
대모풍잠한 늙은이 또요 한 마리를 드리우고 갔다

이 길이다
얼마 가서 감로(甘露) 같은 물이 솟는 마을 하이얀 회
담벽에 옛적본의 쟁반시계를 걸어놓은 집 홀어미와 사
는 물새 같은 외딸의 혼삿말이 아지랑이같이 낀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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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대나무말 : 잎이 달린 아직 푸른 대나무를 어린이들이 말이라 하여 가랑이에 넣어서 끌고 다니며 노는 죽마(竹馬).
대모풍잠 : 대모갑으로 만든 풍잠.
또요 : 도요새. 도요과에 속하는 새의 총칭. 강변의 습기 많은 곳에 살고 다리, 부리가 길며 꽁지가 짧음.
장반시계 : 쟁반같이 생긴 둥근 시계.


여기에 한데 모은 시들은 모두 비슷한 경향의 시들이다.
(1) ‘여우난골’에 실린 시들의 공통점이 막걸리맛 나는 서민들의 질펀한 삶이 서사성 지닌 산문 형태의 시로 표출되었다면, (2) ‘가을 아침, 산’의 시들은 간결한 서정시들이다. 우선 이 시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선명한 이미지를 통해 시의 감각성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런 시들에서는 색채 감각어가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여기에 모은 시들도 「山비」라는 시만 빼고는 모든 시에 색채어가 들어있다. 이를테면, “파란 하늘에 떨어질 것 같이”나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라든가 “푸른 바닷가의 하이얀 하이얀 길이다”와 같이 한 대상의 이미지에 색채를 부여함으로해서 더 선명한 감각을 느끼게 하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반드시 직접적인 색채가 아니더라도 「쓸쓸한 길」과 같은 시를 보면, “뚜물 같이 흐린 날 東風이 설렌다”와 같이 색채를 연상시키는 방법을 통해서 시적 이미지를 선명하게 시도하기도 한다. 뚜물(뜨물)같이 흐린 날의 분위기는 매우 쓸쓸하고 어두울 것이다. 이것은 어떤 직접적인 색깔을 제시한 것보다도 훨씬 시인이 의도하는 바가 효과적으로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들은 이제까지 백석 시에 대해서 알려진 세계와는 다른다. 즉, 이런 시들을 통해서는 이미지스트로서의 백석 시인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이런 시들은 대상에 대한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는 주지적인 태도나 선명한 이미지의 사용 등이 20세기 초 이미지즘 시운동을 펼쳤던 영ㆍ미 이미지즘 시인들의 합동시집 『이미지스트 시인선집』( Some Imagist Poetry : An Anthology, 1915 )에서 제시한 이미지 시의 보편적 원리와도 일치되는 것이 있다. 【☞문덕수, 『한국모더니즘 연구』,시문학사, 1981.p.47.이들이 제시한 이미지 시의 보편적 원리는 ①명확한 이미지, ②정확한 사물의 언어, ③좋은 전통, ④주지적 태도, ⑤새로운 리듬과 자유시.】이 선집을 주도한 시인은 에미 로우얼(Amy Lowell, 1874~1925)이었다. 에미 로우얼은 오랫동안 일본에 체류하면서 일본의 단가(短歌)나 하이구(俳句)의 영향을 받은 이미지즈 시인이다. 그런데 백석의 앞의 시 가운데 「靑枾」나「山비」는 일본의 이러한 짧은 시의 분위기와 유사한 느낌을 주며, 일본시의 영향을 받은 다음과 같은 에미 로우얼의 짧은 시들과도 비슷하다.

두견새 매화꽃 가지에 앉았는데,
흰자위빛 안개로 꽃바다는 보이지 않고
두견새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소

「적막」, 에미 로우얼 작


물 위에 가볍게 앉는 것이
잠자리입니까 단풍입니까?

「가을 안개」, 에미 로우얼 작 【☞ 김재근 역, 『이미지즘 시인선』, 정음사, 1979.】

일본에 유학하여 영문학을 공부했던 백석이었기에 이미지즘의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생각한다. 또한 에미 로우얼을 비롯한 이미지스트들은 일본의 짧은 시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이런 점들로부터 미루어 볼 때 백석 시에서 보이는 이미지즘적 경향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백석의 이미지 시에서 드러나는 특징은 이미지즘 시에서 중요시 여기는 대상에 대한 객관적 태도와, 사물 자체를 직접 처리하는 사물시(事物詩, physical poetry)로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 사물들의 현장에는 으레 리얼한 삶의 목소리를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 등장된다. 그들은 백석의 「여우난골族」과 같은 토속풍의 시에서 흔히 나타나는 그저 그렇게 살고 있는 이 땅의 소박한 사람들이다. 「추일산조」(秋日山朝)만 해도 그렇다. 가을산의 아침이라는 뜻을 제목에 담고 있는 이 시는 가을 아침의 산이 배경이 된다. 1연의 섶구슬 열매가 아침볕에 익어가는 모습과, 꿩이 울어 산울림과 어울리는 정경은 시각과 청각이 조화된 산 속의 한가로운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그렇지만 시인은 사물 그 자체를 관념 없이 그대로 처리하는 것만으로는 흡족하지 않다. 그래서 그는 나뭇꾼(새꾼)을 배경 속에 삽입시킨다. 왁자지껄한 나뭇꾼들의 웃음소리에 그들의 찌들은 삶조차도 묻혀지는 듯하다. 나뭇꾼의 삶이라는 것은 설명하지 않아도 뻔하다. 그렇지만 백석은 고요하고 한가롭게 처리해 놓는다. 그런 점을 더 부연시키기 위해 순례(巡禮)중까지 등장한다. 중의 발꿈치에서일까. 무리돌이 굴러내리는 소리가 고요한 가을산의 아침 정적을 깨뜨린다. 결코 윤택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을, 나뭇꾼과 같은 사람들이 삽입되는 시 속에서도 그 분위기는 어둡지 않다. 심지어 「쓸쓸한 길」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나오는 산비탈을 오르는 거적장사도, 시의 제목이나 또 내용중에서도 ‘쓸쓸한’이라는 말이 거듭 나오고 이 시의 마지막 행에 “뚜물같이 흐린 날”이라는 어두운 이미지가 보이지만 웬지 전체적인 분위기는 무겁고 어두운 시가 아니다.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등장 인물의 초연함 때문이 아닐까. 거적장사가 오르는 산비탈 길은 다르는 사람도 없는 쓸쓸한 길이긴 하지만 가마귀와 개 한 마리가 어정어정 따라나가는 길이며, 땅버들의 하얀 솜털이 날리는 길의 배경이 어둡다기보다는 서정적인, 그리고 세상일에 초탈해 보이기까지 하는 거적장사꾼의 모습이 어두운 느낌을 떨치게 만든다. 이러한 거적장사꾼으로부터 연사오디는 이미지는 나뭇꾼의 이미지와 별다르지 않다. 이것은 도한 푸른 바닷가의 하이얀 길을 걸어가는 「남향」(南鄕)이라는 시에서대모풍잠한 늙은이의 이미지와도 상통된다.
고단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시 속에 등장시키면서도 결코 어둠이나 절망으로 빠뜨리지 않는 백석 시의 건강함은 세월이 지마면서 바뀌어 간다. 그의 개인적 삶과 시대적 아픔이 함께 슬픔의 극단을 장식하던 시대, 이제 백석 시의 모습은 더 이상 밝은 색채를 띨 수 없게 된다.


(3)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위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 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 인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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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 :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
쥔 : 주인
딜옹배기 : 아주 작은 자배기
북덕불 : 짚북더기를 태운 불
나줏손 : 저녁 무렵
바우섶 : 바위옆



이 詩에는 개인의 운명과 한 시대의 아픔이 함께 들어있다.
아내와,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부모 형제와도 떨어져 바람 센 쓸쓸한 거리를 헤매이는 시인의 고달픔은 1936년 이래, 백석 시인의 여정을 통해서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기에 백석은 이 시의 첫머리에 "어느사이에"라는 말을 써서 자신의 운명이 점점 낯선 슬픔의 거리로 내몰리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즉 이 시의 배경이 되는 공간과 시대를 추정해 보면 일제 말기임을 알 수 있고, 그 시대를 견디어 내야 하는 한 지식인의 고뇌가 낮은 신음소리처럼 귓가에 울린다.
이 작품은 1948년, <<학풍>>(學風)10월호에 실렸지만, 그의 친구 허준이 해방 전부터 보관해 오던 시라고 부기되어 있다. 이 詩에 보이는 주인공으로부터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한 개인의 슬픔이 그 시대의 아픔을 대리하는 비극성으로 공명처럼 울려온다는 점이다. 그러나 비극 자체로 끝나지 않음은 우리에게 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슬픔과 한탄을 차츰 앙금처럼 가라앉히고, 어느 먼산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하얀 눈을 맞는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 詩에서 갈매나무가 상징하는 것은 시련의 운명관을 초극하는 의지이며, 여기에서 한국인이 강인한 정신으로 꾸려온 공동체적 삶의 철학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詩를 읽고 있노라면 한 인간이 끝갈 데 없이 빠져 있는 지극한 슬픔의 나락에서, 다시금 처연히 그 슬픔과 슬픔을 가져온 운명을 딛고 일어서는 지고한 초극적 의지를 감지하게 된다. 슬픔이 슬픔 자체로 끝나 버렸을 때 우리가 느끼는 감동은 반감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시는 먼산 바우섶에 외로이 서서 쌀랑쌀랑 나리는 하얀 눈을 맞을 굳고 정한 갈매나무에 자신의 초극 의지를 비유함으로써 슬픔으로부터 반전되는 깊은 삶의 사유세계를 획득하게 된다.
백석의 전기적 사실로 보면 이 시는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아내, 쟈야 여사와도 헤어진 후 서울을 떠나 만주로 옮겨가 살면서 겪었던 이야기이다. 어느 사이 아내도 없고, 부모 형제와 고향을 등지고 목수네 집 곁방을 얻어서 생활하는 초라한 자신의 모습은 주권도 국토도 빼앗긴 채 머슴처럼 그 시대를 살아가던 민족의 아픔과 오버랩된다. 그렇기에 한 비평가는 이 시에서 이 나라 역사의 굵은 주름살을 본다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 류종호,「한국의페시미즘」,<<현대문학>>통권81호, 1961.9. )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 시의 화자인 시인은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질 정도로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다. 그러나 시인에겐 곧 심리적 전환이 일어난다. 이대로 절망의 나락에 빠질 수 없다는 상승 여망이 이 시의 20행에서 부터 보인다. 고개를 들어 문창을 바라보는 것과,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바라보는 행위는 바로 이러한 괴로움으로부터 상승하고자 하는 상징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마음을 가다듬으며 며칠을 보내는 동안 슬픔과 한탄 등,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자 갈매나무라는 나무로 비유하여 자신의 초극의지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팔 원 ( 八 院 )
― 서행시초(西行詩抄) 3



차디찬 아침인데
묘향산행(妙香山行) 승합자동차(乘合自動車)는 텅하니
비어서
나이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오른다
옛말속같이 진진초록 새 저고리를 입고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졌다
계집아이는 자성(慈城)으로 간다고 하는데
자성(慈城)은 예서 삼백오십리(三百五十里) 묘향산(妙香山)
백오십리(百五十里)
묘향산(妙香山 어디메서 삼춘이 산다고 한다
쌔하얗게 얼은 자동차(自動車) 유리창밖에
내지인(內地人) 주재소장(駐在所長) 같은 어른과 어린아이
들이 내임을 낸다
계집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
텅 비인 차(車) 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

계집아이는 몇 해고 내지인(內地人) 주재소장(駐在所長)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렇게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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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임을 낸다 : 배웅을 한다


이 詩는 1939년 발표되었던 것으로 백석이 서울을 떠나 만주의 신경으로 거주지를 옮겼던 해의 작품이다. ‘서행시초’(西行詩抄)라는 부제로 발표된 네 편의 시 간운데 한 편이다.
이 시의 계절이 겨울인 것으로 볼 때, 아마 백석이 만주로 가는 도중 ( 앞의 백석의 전기에서도 밝혔듯이 그는 1939년 겨울에 만주로 떠났다)에 쓴 여행시인 것 같다.
이 작품은 유난히도 백석 시인의 민족의식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일본인 주재소장과 그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는 조선인인 나이 어린 계집아이의 구도 안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식민지 시대의 뼈저린 아픔이다.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몹시 터진 나이 어린 계집아이의 우는 모습과, 자동차 한 구석에 앉아 그 모습을 보고 함께 눈물을 훔치는 사람을 통해서 시인은 진한 민족적 비애를 표출하고 있다. 백석의 다른 시들과 마찬가지로 화자는 객관적 자세로 대상을 노래하고 있는데, 설령 화자가 관찰자의 입장에 서 있다 해도, 그의 의도는 일본인 주재소장과 가엾은 조선 계집아이를 함께 등장시켜서 그 시대의 아픔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이 시에서처럼 민족의식을 표면적으로 읊은 백석의 시는 찾기 어렵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 이 나라 역사의 주름살이 엿보인다고 한 비평가는 말했지만, 「팔원」처럼 그 민족의식이 시의 표면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백석이 민족적 자각의식이 분명한 시인이었음은 그가 시에서 강조하며 찾고자 했던 우리 고유의 풍물과 언어, 순박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이미 에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백석이야말로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점점 사라져가기 시작하는 우리 문화의 순결한 얼을 지키면서, 시의 현대성을 호흡하고자 했던 진정한 의미의 모더니스트였기 때문이다.



적막강산


오이 밭에 벌배채 통이 지는 때는
산에 오면 산 소리
벌로 오면 벌 소리

산에 오면
큰솔밭에 뻐꾸기 소리
잔솔밭에 덜거기 소리

벌로 오면
논두렁에 물닭의 소리
갈밭에 갈새 소리

산으로 오면 산이 들썩 산 소리 속에 나 홀로
벌로 오면 벌이 들썩 벌 소리 속에 나 홀로

정주(定州) 동림(東林) 구십(九十)여 리(里) 긴긴 하로 길에
산에 오면 산 소리 벌에 오면 벌 소리
적막강산에 나는 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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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배채 : 들의 배추
물닭 : 비오리. 오리과에 딸린 물새. 쇠오리와 비슷한데 좀 크고 부리는 뾰족하며, 날개는 자주색이 많아 오색이 찬란함. 원앙처럼 암수가 함께 놀고, 주로 물가나 호숫가에서 물고기, 개구리, 곤충류 따위를 잡아먹음.
동림(東林) : 선천에 있는 지명 이름. 특히 동림폭포가 유명하다.


이 시는 1947년 12월 《신천지》(新天地)에 수록되었던 시로, 백석과 절친했던 친구인 허준이 해방 전부터 보관했다가 발표하는 것이라고 부기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시는 일제말 해방 직전에 쓰여졌음이 분명하다. 백석은 1941년 4월, 《조광》,《문장》,《인물평론》에 한꺼번에 6편의 시를 발표하고는 더 이상 창작시를 발표하지 않았다. 백석이 시를 쓰지 않았다기보다는 일제말의 조선어 말살정책으로 우리말로 된 시를 발표할 수 없었던 암흑의 시기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그의 작품 「적막강산」은 쉽게 이해된다. 왜 「적막강산」인가. 이 시의 4연과 5연에 그에 대한 대답이 들어있다. “산으로 오면 산이 들썩 산소리 속에 나는 홀로 / 벌로 오면 벌이 들썩 벌 소리 속에 나 홀로”라는 내용에서 백석이 겪는 고독감과, 대자연의 이치에 일탈되어 있는 현실을 적막강산이라고 했음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무렵 떠돌이 행각의 백석은 심신을 달래고자 그의 고향 정주를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몸과 마음이 다 지쳐 있을 무렵이었고, 시대적으로는 조상이 물려준 성과 이름을, 그리고 우리말과 글을 빼앗겨 벙어리가 되었던 역사적 현실이 답답했던 시절이었기에 자연의 정직한 순리에 빗대어 그렇지 못한 현실을 ‘적막강산’이라고 표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료출처 : 백석 우리문화의 원형탐구와 떠돌이 삶 / 박혜숙 / 건국대학교출판부 / pp.5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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