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에지야

기형도의 직유와 은유

달그리매 2007. 8. 6. 16:46
  (1)
   요절(夭折)한 시인 기형도,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아둔한 삶의 뒷꼭지까지 볼 시간이 필요하다 싶은 게 통념이지만
   맨 살갗에 소름 돋게 하는
   삶에 대한 쓸쓸한 인식의 단층사진 촬영술은
   차라리 시간의 부족함이 지나침보다는 훨씬 나을 법하다는
   책임감 없는(?)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가운데에서
   기형도는 이미 완성된 한 인간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천재나 대가(大家)의 눈에는
   어쩌면 키치 같은 것으로 보여질 수도 있겠지만
   찬연히 빛을 내는 그의 직유와 은유를 들여다보고 있을라치면
   스스로 둔재임을 절망하는 기형도의 고백 앞에서
   나의 둔재를 오히려 위안 받는 몰염치를 저질러 보면서도
   좋아하는 일과 잘 할 수 있는 일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경구(警句)에 턱을 괴어 본다.
   그가 신문사의 신춘문예 담당기자로 있을 때
   20년째 내리 낙선에 낙선을 거듭하지만
   그러나 해마다 끈질기게 응모소설을 접수하러 오는
   그의 장편(掌篇) 속 은사의 모습에
   나의 오늘을 이입해보기도 하면서......
  
   (2)
   비유법 중 직유의 서술구조는
   'A는 B처럼 C하다'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묘사되는 A는
   B의 수많은 속성 가운데
   시인의 눈에 포착된 C라는 형용(形容)으로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오게 마련이다.
   만약 A=B라는 등식이 너무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것이라면
   진부하다는 허물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관계맺음이면서도 성공적인 궁합을 이뤘을 때
   시인은 삶의 새로운 국면을 제시했다는 특허를 얻을 만하다.
  
   기형도의 직유 몇 가지를 맛보자.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있어야 한다 -- (안개)
  
   그들(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들)은 왜 가축들처럼 쓸쓸하게 보였을까?
   또 가축들은 왜 기형도에게 쓸쓸한 눈빛으로 돋을새김되어 있었을까?
   그는 그 이유를 주변과의 단절(안개)에서 각성되는
   자아의 인식에서 찾고있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지고)...../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있음을 느끼고 경악'하는 모습을 그는
   인간의 눈으로는 그 어떤 의사소통도 하지 못하는
   가축들의 쓸쓸한 눈에 직유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은 딱딱한 널빤지처럼 떠 있다/
        무슨 農具들처럼 굽은 손가락들/
        빈 골목은 펼쳐진 담요처럼 쓸쓸한데  --(白夜)
  
   눈 내리는 밤하늘이 딱딱한 널빤지로 떠 있을 때
   (그런 하늘은 압사(壓死)라는 어휘를 떠올리게 한다)
   군용파카 속에 어린 아들을 들쳐 입은 한 사내의 손이
   무슨 농구(農具)들처럼 굽어 있는 모습은 매우 익숙한 직유다.
   그러나 '펼쳐진 담요처럼 쓸쓸한' 빈 골목......
   이 풍경에 이르면 머리를 갸웃거리면서 할 말을 잃는다.
   하얗게 눈이 덮인 골목길.....
   이부자리를 펴둔 채 그 사내의 아내는 종적을 감추기라도 한 것일까......
   '문닫힌 商會 앞에서 마지막 담배와 헤어지는' 그 사내는
   바로 이 땅의 부도난 세기말을 연상하게 한다.
  
  
        습관은 아교처럼 안전하다/.....
        콘크리트처럼 나는 잘 참아왔다 --(오후 4시의 희망)
  
   습관과 아교가 서로에게 곁을 내준 부분은 무엇일까?
   한번 달라붙으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는... 뭐 그런 것?
   그럼 '좀처럼 잘 떨어지지 않음=안전?'이라는
   이미지의 전화(轉化)는 어떻게 이뤄진 것일까?
   '한번 꽂히면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죽음도 살지 못하는,
   그래서 오래 전부터 그것들과 몸을 섞어올 수밖에 없었던'
   타성의 그물은 곧 나에게 습관처럼, 아교처럼 달라붙어서
   물방울 하나도 새지 못하게 틀어막고 있다...그런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 습관과 아교는 그런대로 궁합이 잘 맞다.
  
   '콘크리트처럼 나는 잘 참아왔다'....
   '침묵은 그러나 얼마나 믿음직한 수표인가'....
   쉽게 이해되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주는 비유다.
  
   하지만, 이건 또 어떤가?
  
        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 --(봄날은 간다)
  
   그의 봄날 스케치는 위악스런 유모어의 간유리에 투영된 모습이다.
    '분가루처럼 흩날리는 햇빛,
    한 장 열풍(熱風)에 말려 둥글게 휘어지는 그림자,
    아무 때나 손을 흔드는 미루나무,
    아, 그리고 서울집 툇마루에 앉은 여자.....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
  
   그처럼 가볍게 경쾌한 텃치로 그려나가던 봄날은
    '희미한 연기들마저 쓸쓸한 풀잎의 자손'으로 생각하게 하고
    세숫대야 속에 삶은 달걀처럼 잠긴 얼굴은
    봄날이 가면 그뿐이고
    숙취(熟醉)는 몇 장 지전 속에서 구겨진다는 장탄식으로
   그만 목이 메고 만다
  
   다시 직유의 구조를 생각해보자.
   'A는 B처럼 C하다'에서 B를 보는 것은
   경험이나 우연의 소산일 수도 있지만
   C를 느끼는 것은 시인의 주된 정조(情調)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기형도의 직유에서 느낀 그의 주정(主情)은 '쓸쓸함'이었다.
   그는 안개 속에서도, 눈 내리는 밤에도,
   그리고 외상값 갚으라고 손내미는 봄 햇살 속에서도 쓸쓸함을 느끼고 있다.
   그는 왜 쓸쓸했을까?
   그는 그가 존경했던 어떤 스승의 말을 빌리고 있다.
   '삶과 존재에 지칠 때
   그 지친 것들을 구원해줄 수 있는 비유는 자연(自然)이라고.'
   그리고 그가 '밤눈'이라는 작품을 쓰고 나서부터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고.....
  
   (3)
   은유(隱喩)는 합리적이고 산문적인 비유를 벗어나
   질적인 도약을 통해 두 가지 대상을 동일시하거나 융합하여
   그 두 가지의 특성이 다 들어있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은유는 논리를 앞서거나 우회하는 사고체계이다.
  
   은유는 시인의 마음속을 짚어나가는 보물지도와도 같다.
   보물을 너무 쉬운 곳에 숨겨놓으면 그 놀이가 재미없듯이
   은유는 적절한 메시지의 사탕을 숨기고
   바위틈이나 풀더미 속에 가장 알맞은 은폐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
   쓸 데 없이 나이를 많이 먹어버린 어른들이
   더 이상 보물찾기를 하지 않듯이
   어쩌면 광포한 스트리킹처럼 드러내는
   은유의 내홍(內訌)을 견뎌낼 재간이 없어
   우리는 종종 어려운 시 읽기를 포기하고 만다.
  
   기형도의 은유는 그러나 그렇게 막돼먹은 광포함까지는 아니다.
   누구나 조금씩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고
   그가 말했듯이 안개주식회사에서 퇴근을 하는 길에
   진눈깨비라도 맞을라치면
   '구두 밑창으로 여러 번 불러낸 추억이 밟히'기도 할 것이고
   '한 때 내 육체를 사랑했던 이별들'과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들'을 품고
   '누구에게도 쉽사리 자수하지 않는' 죽음 때문에
   '초침 부러진 어느 젊은 여름 밤'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공기는 푸른 유리병, 그러나
        어둠이 내리면 곧 투명해질 것이다. 대기는
        그 속에 둥글고 빈 통로를 얼마나 무수히 감추고 있는가!
                     (어느 푸른 저녁)
  
        쉽사리 틈을 보이지 않는 어둠의 잔등에
        시뻘건 불의 구멍을 뚫곤 하였다.........
        우리도 한 때는 아름다운 불씨였다.
                     (廢鑛村)
  
   이렇게 두서없이 헤짚어 보는 기형도의 은유 속에서
   그의 서른 인생의 슬픔과 깊이를 거론한다는 것은 부도덕하다.
   그러나 그가 우리들보다 앞질러 타전(打電)했던
   살아내는 일들의 쓸쓸함을 뒤늦게 따라 가노라면
   우리의 술에 술 탄 인생, 물에 물 탄 인생도
   그럭저럭 농밀(濃密)한 봄밤의 그리움 한 조각이나마
   염치없이 가져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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