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하나

달의 뒤편

달그리매 2007. 8. 8. 14:54

    달의 뒤편/장 석 주 

     

     

     

    그믐밤이다. 소쩍새가 운다.
    사람이건 축생이건 산 것들은
    사는 동안 울 일을 만나 저렇게 자주 운다.
    낮엔 상가를 다녀왔는데
    산 자들이 내는 울음소리가 풍년이었다.
    무뚝뚝한 것들은 절대 울지 않는다.
    앞이 막혀 나갈 데가 없는 자리에서
    '죽음!'하고 나직이 발음해 본다.
    혀뿌리가 목젖에 붙어 발음되는
    이 어휘의 슬하에 붙은 기억 받침과
    막다른 골목의 운명은 닮아 있다.
    저녁 산책길에서 똬리 튼 뱀을 만나고
    저수지에서는 두어 번 돌팔매질을 했다.
    작약 꽃대가 두 뼘 넘게 올라왔다.
    그믐밤이다, 직립인 앞 길이 캄캄하다.
    소쩍새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며
    마시는 커피는 쓰고 깊고 다정하다.
    다시 혼잣말로 '죽음!'해 본다.
    바닥이라고 생각한 그것은
    바닥이 아니었다.

     

     

     

     

    계간 '서시' 07.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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