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시와 아이러니
이기철
예견되었던 일이긴 하지만, 우리 시단은 바야흐로 서정시의 시대를 맞고 있다. 시 전문지뿐 아니라 비판적 교양지라고 일컫던 몇몇 잡지나 문예지들에도 서정시의 발표가 현저히 많아지고 있다. 시인들이 시대 상황에 민감한 탓인가? 서정시가 문학의 원류이기 때문인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디튜람보스」가 서정시의 원류였다면 서정시의 역사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오래된 것이지만, 서정시의 숨은 힘은 노래하는 시보다 말하는 시의 위세가 더 당당했던 시절, 어떻게 노래하느냐보다 무엇을 노래하느냐가 시에 있어서의 더 큰 관심사였던 시대를 지나 이제 서정시의 아름다움이 한결 돋보이는 시대로 변전되어 가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시인들이 서정시를 쓴다는 이유로 말의 정돈, 생각의 간결함, 무늬 고운 언어의 선택에만 안주한다면 시의 도저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고 시의 발전을 위한 자기 희생이라고 할 실험시의 과감한 시험은 더욱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실험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기 시험이고 시의 스테레오 타입(固着)화를 막는 자기 방어의 정신이므로 그것이 설령 완결되지 않은 것이라 해도 그 정신의 시험은 고양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랜 기다림 끝에 조우한 서정시에의 귀환은 그것이 설령 편애가 된다 할지라도 아직은 지속되어야 할 필요와 당위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이달의 작품 가운데는 주병율이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시에서의,
마곡, 十勝地, 3월, 봄인가 봅니다. 한 떼의 아이들은 물이 오른 나뭇가지의 속살을 벗기며 허기진 날들을 줏으러 강가로 가고 3월도 한참을 지난 3월인데 나는 아직 내복을 입고 삽니다 ――(「十勝地」, 『현대시』, 5월호)
와 같은 따뜻한 감수성과 미려한 修辭를 보며 즐거워할 수 있었고, 정영선이 보여주는 「가랑잎 사랑」(『현대시』, 5월호)에서의
이른 봄날 물푸레 나무 밑에서 나는 편지가 되었지요. 땅 가득 떠나지 않은 지난 해의 물푸레 잎사귀들이 올해 잎사귀들에게 자꾸 무언가를 전하고 싶다는군요
와 같은 발랄한 감각과 기발한 상상력에서 시를 읽는 재미와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이른 봄날 물푸레나무 밑에서 편지가 된 시인은 땅에 떨어져 뒹구는 낙엽과 움돋아 피어오르는 새 잎 사이에서 그들만이 갖는 푸른 언어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만이 알 수 있는 연두빛 대화를 사람의 대화인 양 죄다 알아듣는다. 그러기에 시인의 귀는 <발 밑에서 버석거리는 소리들을 우편배낭 같은 가슴께로 부쳐오면 소리들이 잠시 모였다가 제 주소로 어김없이 찾아가는 푸른 숨결>까지를 모두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앙징스러운 상상의 그림이요 반짝이는 기지의 언어들이다.
그러나 이 달의 시에서는 함민복의 「귀향」이 보여주는 서정성과 서정시가 지니는 반어법의 함축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시 「귀향」은 낯선 도시를 떠돌던 시인이 고향에 들렀을 때의 느낌을 반어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시이다. 시의 첫연의 표현대로 시인은,
낯설지 않은 도시를 떠돌다 낯선 고향에 돌아왔
다. 모든 젊은이가 그렇겠듯이,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가 보면 이러저러한 감회에 젖기 마련인데, 이 시에서의 표현은 그러한 감회를 <낯설지 않은 도시>와 <낯선 고향>으로 병 치시킨다. 더욱이 이 시의 반어적 효과는 <낯선 도시가 아니라 낯익은 도시>에 있으며 <낯익은 고향이 아니라 낯선 고향>에 있다. 반어적 발상이 범연하지 않다. 그러면서 우리가 갖는 일반적인 고향의식이라던가 향수를 이 시의 첫연은 한꺼번에 뒤집어 버린다. 고향에 대한 일상적인 感傷을 일거에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감상의 돌연한 제거는 시대적인 요구이자 개인적인 욕구이다. 시인의 감정으로는 설령 고향에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거기에 오래 머물거나 거기에 정착할 마음은 없다. 이내 떠나야 할 고향에 와서 새우는 하룻밤을 아늑하다거나 평화롭다거나 하는 화해의 마음으로 바라볼 여유가 없다. 우리 사회에서 이농과 이향이 진행되어 온 것은 어언 30년, 그리하여 고향은 낯설어지고 도시가 오히려 낯익게 된 것은 누구에게 있어서나 공통적인 현상. 그것을 시인은 시의 허두부터 아이러니컬하게 꼬집고 있는 것이다.그러면서 이 시는 도시에서의 생활까지도,
문이 사람을 열어주는 빌딩을 기웃거리고 죽은 고기를 씹고 풀냄새가 아닌 담배냄새나 맡
는 생활이라고 묘파한다. 이 시의 표현대로라면 이 시인은 아직 도시의 주인이 되었거나 주인의식을 가지지 못한 채 다만 떠돌고 있다. 그러므로 빌딩에 안주하지 못하고 빌딩을 기웃거려야 하고, <들이 아닌, 강이 아닌, 산이 아닌, 식당에서나 죽은 고기를 씹어야 하며, 맡고 싶은 풀냄새를 맡지 못하고 담배냄새나 맡>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감상적으로 들릴 만한 다음과 같은 구절,
이 땅에 살았다면 같이 살던 동네 사람들 내 나이 수만큼은 흙 속에 묻어 주었을 텐데
역시 그러기에 감상으로 들리지 않고 오히려 반어적으로 들린다.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라.
여자 몸 속에 아이 하나 못 심고 사십이 다 되어 홀로 돌아와 살아온 길 잠시 벗어보
는 마음은 그러기에 화해롭거나 평화로울 수가 없다. 자책과 회한과 자기 모멸이 들어 있는 이 구절은 이 시에서의 가장 정채있는 부분이자 가장 날카로운 반어를 품고 있는 부분으로 읽힌다. 함민복이 그야말로 <여자 몸에 아이 하나> 심었는지 못 심었는지를 필자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시의 표현으로 보아서는 아직도 혼자인 듯하고 그러기에 그가 떠도는 도시는 더욱 거칠고 삭막하고 죽은 고기나 씹고 담배냄새나 맡을 수밖에 없는 생활이며 또한 그러기에 돌아온 고향에서의 하룻밤이 <쉬이 잠이 오지 않는> 밤일 수밖에 없다. 이문재의 글 「애비는 테레비였다」(『문학동네』, 1998년 여름호)에 의하면, 함민복은 신경림의 고향 마을에서 출생했고 수도전기공고를 나왔고 기능사 2급 자격증을 들고 월성핵발전소에 취직을 했다가, 대부분 의 시인들이 그렇듯이 <기계에 대한 불신>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고 서울예전 문창과를 다녔으나 미지근한 강의실에 실망했고, 다시 찾은 발전소에서도 발전소 친구들이 돈을 염출해 <너는 시나 써라>라는 권유에 의 해 서울로 돌려보내졌고 88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고 서울예전을 졸업했지만 아직 마땅히 갈 곳이 없고 달동네에서 자취를 하거나 친구 방에 기숙하기도 하는, 마침내 그의 시집 제목이 되고 만 「우울씨의 1일」처럼 우울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기에 그의 시는 「밥의 시」(이문재, 같은 글)로 읽힐 수가 있다. 밥과 옷과 집이 있고 그리고 시가 있다고 할 때, 그 말이 어찌 한가하고 배부른 소리만일 수 있겠는가? 밥과 옷과 집, 그리고 시,라는 순차적 배열은 그러기에 불가결한 생명줄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함민복의 이 시는 대개의 그 연배들이 쓰는 시와는 달리 형태로도 정제되어 있고 불필요한 수다를 제거하고 있으며 짙은 우수와 비애를 깔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노출하지 않으려 한 흔적이 역연하다. 아마는 틀림없겠지만, 함민복은 이 시에서 우수와 비애를 은닉하는 한 방법으로 아이러니를 택했을 것이다. 아이러니는 속성상 감상의 방임을 막고 탄력있는 시행을 만드는 데 기능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좋은 시의 자질로서 「아이러니의 시학」을 주장했던 신비평가 클리언드 부룩스의 말은 아직도 시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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