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개진 귀
손진은
이런 무안이 어디 있는가
잘려나온 둥치일 뿐인데
등뼈 휘어진 가벼운 목숨일 뿐인데
옥수수 파 콩을 심은 밭 둘레
바람이며 개 고양이 막으라고
어깨동무 하고 허리 껴안은 채 이마에는 나란히 나일론 띠 두른 채
발목 오그린 싸릿대일 뿐인데 느닷없는 가려움으로
한 줄 말씀처럼 찔끔,
불쑥 설레던 공기를 밀어내며
하늘 뿔질하는 벌건 귀가 돋으니
나 불쑥 다른 길에 들어서버린 것가
꺼멓게 말라가며 징역인 듯 잠인 듯 서 있으려는 것이었는데
햇빛 달빛 끄댕이와도 몰래 눈맞춘 적 없는데
갇혀 지내던 몸이 시방 제 안의 달디단 바람을 일으킨 것가
끊긴 핏줄이며 근육이 올라붙은 흙더미와 내통이라도 한 것가
허옇게 센 귀밑머릴 뚫고
웬 화끈거리는 깃발은 흔들어대나 말이지
모르게 붉어진 눈시울에 먼 하늘 담아 들고
뻘쭘히 커버린 키와 뜨건 알처럼 슬어놀 흰꽃 그늘까지 퍼덕이며
저승꽃 늘어나는 옆 친구들 텃밭 속 주인들
쏘아볼 눈빛 어떻게 견디란 것가
사지를 빳빳하게 발기시키는 흙살의 수작이 허, 미운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