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에지야

창작강의 및 감상평

달그리매 2006. 7. 9. 14:51
창작강의 및 감상평(1) /윤재순


☞ 시를 쉽게 쓰는 요령은 상상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초보자들이 시를 쓸 때 제일먼저 봉착하는 것이 어떻게 시를 써야하며, 또한 어떻게 쓰는 게 시적 표현이 되는 것일까 하는 점입니다. 필자도 초보자 시절 이러한 문제에 부딪혀 이를 극복하는 데에 거의 10년이 걸렸습니다. 그 동안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듭했던 거죠.

필자가 이와 같이 시행착오를 거듭했던 이유는 시란 ' 자기가 경험했고, 보고 느낀 것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게 시다' 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좋은 시를 힘들이지 않고, 개성적으로, 재미있게 쓰는 데에는 이게 바로 함정이라는 걸 나중에야 깨닫게 된 거죠. 경험과 느낌은 모든 사람들 대부분이 비슷합니다. 그러나 상상은 천차만별이죠.

하여, 시를 힘들이지 않고, 개성적으로 잘 쓰려면 상상으로 써야 합니다. 상상으로 써야 발전이 빠르고 좋은 시를 계속 양산할 수 있습니다. 즉 시란 자기가 쓰고자 하는 소재를 두 눈 딱 감고 상상해서 쓰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단순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초보자 시절에는. 보고, 느낀 걸 쓰는 게 시다라는 고정관념에 빠지니깐 시를 한 줄도 제대로 전개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게 되는 겁니다.

즉 보고 느낀 것이 다 떨어지면 그때부터 허둥대기 시작하는 거죠. 기껏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게 자기 주변 친구, 부모, 어린 시절 이야기 등을 둘러대는 정도. 그리곤 스스로 훌륭한 시를 썼다고 자기도취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시가 되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만 99%가 그렇고 그런 이야기, 누구나 다 보고 느끼는 형편없는 넋두리, 서사, 풍경 나열이 되기가 일쑤죠.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시를 써왔다면 이 순간부터 기존 쓰는 방식을 잠시 접어두고 필자가 안내한 대로 석 달만 같이 공부해 보도록 합시다. 글이 달라지는 걸 본인 스스로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우선 상상하는 것부터 배우도록 합시다. 그러면 어떻게 상상할 것인가?

우선 상상할 소재, 즉 상상할 대상을 구체적인 것 하나를 고르세요. 자신이 있는 곳이 지금 사무실이라고 하면 주변에 있는 꽃병, 벽, 창, 하늘, 노을 등이 있을 겁니다. 이중 어느 하나를 골라 봅시다.

필자가 먼저 어떻게 상상하는지 그 방법의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노을>로 한번 해볼까요?
기존 방식대로 <노을>이란 소재로 시를 한번 시를 써 보라고 하면 대다수가 노을을 쳐다보며 < 피 빛 노을이 아름답구나/ 나는 저 노을 아래로 걸어간다/ 친구와 함께...> 대다수가 아마 이런 식으로 글을 시작하지 않았겠나 여깁니다. 그러나 이건 느낌을 적은 것이고 상상한 게 아닙니다.

상상을 이렇게 해보는 겁니다. 만약 자신이 현재 애로틱한 감정상태에 있다면 <노을>을 바라보며, 또는 <노을>을 머리 속에 담고서 이렇게 눈부신 상상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한 여자가 옷을 벗고 있다/ 그녀가 옷을 벗으니까 눈부셔 눈물이 날 지경이다/ 나도 저렇게 발가벗고 그 곁으로 가고 싶다/ 아니다, 그녀를 데리고 여관으로 가고 싶다/ 가서 같이 포도주 한 잔을 건넨 다음 껴안고 뒹굴고 싶다........> 이렇게 노을을 발가벗고 있어서 눈부신 여자로 여기고 계속 상상해 가는 겁니다. 이땐 순서를 생각하지 말고 앞 상상의 핵심어를 가지고 다음 상상을 유치하든 품위 있든 따지지 말고 계속 해보는 겁니다. 그리고 이걸 나중에 논리적으로 순서를 다시 잡아 정리, 수정해 가면서 다듬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제목을 <북한산 노을>로 붙여본다고 생각해 보세요. 정말 근사한 한 편의 시가 탄생할 것 같잖아요?

이번에는 <노을>을 보고 자신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고 한다면 빨간 노을을 머리 속에 담고서 이렇게 상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아이들이 모닥불을 피고 있다/ 그 모닥불은 연기가 없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저 불에 나는/ 고구마를 구어 먹고 싶다/ 제일 잘 익은 것을 꺼내/ 이웃 동네 창수에게 건네주고 싶다/....난 저 모닥불에 오줌을 갈겨 피식 소리가 나게 끄고 싶다....> 이렇게 <노을>을 <모닥불>로 여기고 모닥불과 관련된 온갖 경험, 추억, 익살스런 행동, 우수꽝스런 생각, 이야기들을 계속 꺼내가면서 상상을 하는 겁니다. 이때 유의할 점은 <노을>을 <모닥불>로 치환했으면 <모닥불>을 멀리 떠나서 상상을 하면 안됩니다. 모닥불과 관련이 있는 내용으로 상상을 펼쳐야지 그렇지 않으면 시의 초점이 흐려지고, 내용이 난해해 지게 됩니다

다른 소재들로 상상하는 것도 위와 같은 방식으로 하면 됩니다. 더 다양하고 구체적인 방법, 다듬는 법, 순서를 잡는 법, 제목을 붙이는 법....등등은 그때그때 하나씩 계속 예를 들기로 하고 오늘은 상상하는 요령만 익혀두기로 합시다. 시를 쉽게 쓰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상상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하며 게시판에 올라온 시를 한번 감상해 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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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일 님의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시를 먼저 감상해 봅시다.
필자가 위에서 말한 내용을 새기면서 이 시를 읽으면 방승일 님의 시가 왜 시가 될 수 없는지를 금세 알 수 있을 겁니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말을 무수히 하였는데도 하나도 우리의 눈길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건 상상을 하지 않고 느낌을 적었기 때문입니다. 느낌이라도 참신한 느낌을 쓰면 한 두 줄 시로 성립할 수 있지만 그것마저도 찾아볼 수 없군요. 본인이 섭섭해 할까봐 구체적으로 한번 지적해 볼까요?

첫줄에 <서른 즈음엔 사람이 되고 싶다/ 지나온 나이테의 껍질을 벗고서....>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서른 즈음에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했는데...이게 내용적으로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서른 나이에 아직도 사람이 되지 못하고 서른 나이에서야 사람이 되겠다는 게 남에게 얼마나 공감을 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선언해 놓고서 두 번째 줄에서 왜 갑자기 이야기가 나무로 변했습니까? 두 번째 줄의 내용이 성립하려면 첫줄의 표현이 <서른 즈음에 나무가 되고 싶다>라고 표현했어야 하죠. 그렇지 않습니까?

남에게 공감을 주거나 눈길을 잡으려면 의미 있는 말, 남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말을 개발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서른 즈음에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말을 거꾸로 '서른 즈음에 황소가 되고 싶다' 라고 말해 보세요. 이게 독자의 눈을 훨씬 더 끌지 않을까요. 우선 독자들이 이 글을 읽고 왜 이 작자가 사람도 아닌, 황소가 되려할까 궁금해하지 않겠어요?

하여, 방승일 님은 첫줄을 <서른 즈음에 난 나무가 되고 싶다>, 또는 <서른 즈음에 난 황소가 되고 싶다>라고 선언해 놓고 나무의 좋은 점, 이로운 점(그늘,목재,땔감,기둥... 등등)과 황소의 어진 점, 부지런한 점, 묵묵한 성격..등등을 위에서 설명한 상상의 요령에 따라 시를 다시 써 보기 바랍니다.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처음에는 시적 표현을 한 줄 얻어도 큰 소득이다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기본기를 착실히 다져놓으면 시 쓰는 건 금방입니다. 제시한 과제로 시를 다시 써서 올리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윤주 님의 <비>를 감상해 보도록 합시다. 윤주 님은 방승일 님보다 더 쉽게 상상으로 빠질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뵙니다. 그러나 느낌과 생각을 중구난방 해서 내용이 가슴에 와 닿는 게 없습니다. <비>라는 소재를 어떤 것 하나로 비유해 놓고 그 하나의 속성, 내용, 사상 등을 집중해서 파고들기 바랍니다. 그래야 글에 초점이 생기고 내용이 깊이를 갖고 설득력도 있게 됩니다.

여기에서 끝내기가 아쉬우니깐 윤주 님의 시 첫줄 하나만 봅시다. 첫줄에서 비가 <설탕이 뿌려지는 것처럼 보드랍게 내린다>라고 했습니다. 추측컨데 가랑비가 부드럽게 내리는 걸 표현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근데 표현이 어설퍼요. <설탕>의 이미지는 통상 달콤한 이미지입니다. 근데 부드러움을 표현하는데 둘러댔어요. 그래서 이 비유가 어설프고 미숙한 겁니다. 부드러운 이미지를 갖고있는 건 통상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천이 아닙니까. 더 나아가 비단 천? 그렇다면 부드럽게 내리는 비를 표현하려면 이렇게 하면 되죠. < 지금 내리는 비에는 비단 천이 들어 있다 >라고 말이죠. 그리고 나서 비단 천으로 묘사했으니깐 그 비단 천하나로 위에서 설명한 방식으로 집중해서 상상을 펼쳐보는 겁니다.

그리고 비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소낙비, 우박비, 여우비, 보슬비, 봄비, 가을비 등등..
그래서 표현하고자 하는 비도 이중에서 어느 하나를 골라서 시로 쓰려고 해야지 모든 비를 아울러서 시로 표현하려고 하면 1급 시인도 쓰기 힘듭니다. 따라서 윤주 님도 봄비나 보슬비 하나를 골라 위에 제시한 표현을 첫줄로 놓고 시를 다시 쓰기 바랍니다. 처음에는 두 달, 아니 반년이 걸릴 수도 있어요.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고민해서 쓰기 바랍니다. 깊고 넓게 고민하는 자만이 크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땐 뭐든지 막막합니다. 그래서 참고가 될만한 시를 첨부하오니 <밑>, <모퉁이>, <벽>이란 낱말 하나를 가지고 어떻게 끈덕지게 물고 늘어져 상상력을 발휘하였는지를 유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김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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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관하여



나는 위보다는 밑을 사랑한다.
밑이 큰 나무, 밑이 큰 그릇, 밑이 큰 여자....
그 탄탄한 밑동을 사랑한다.

위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밑동도 다 넓은 것은 아니지만
참나무처럼 튼튼한 사람,
그 사람 밑을 내려가보면
넓은 뿌리가 바닥을
악착같이 끌어안고 있다.

밑을 잘 다지고 가꾸는 사람들....
우리도 밑을
논밭처럼 잘 일궈야 똑바로 설 수 있다.
가로수처럼 확실한 밑을 믿고
대로를 당당하게 걸을 수 있다.
거리에서 명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밑이 구린 것들, 밑이 썩은 것들은
내일로 얼굴을 내밀 수 없고
옆 사람에게도 가지를 칠 수 없다.

나는 밑을 사랑한다.
밑이 넓은 말, 밑이 넓은 행동, 밑이 넓은 일...
그 근본을 사랑한다.
근본이 없어도
근본을 이루려는 아랫도리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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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모퉁이에 관하여



모퉁이가 아름다운 건물을 보면
사람도 모름지기 모퉁이가 아름다워야
아름다운
입체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향기로운
내부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퉁이가 둥근 말, 모퉁이가 귀여운 사랑
이들에게는
한결같이 모난 부분을 둥그렇게 구부린 흔적이
바라보는 사람을 황홀하게 한다.
나는 이 아름다운 옆구리를 한번 돌아가보면서
모퉁이란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될
건물의 중요한 한 분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부까지 품위 있게 해주는
의식의 요긴한 한 얼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퉁이를 가꾸는 사람들...
경제학적으로 검토하면 비효율적 투자이겠지만
모두가 모퉁이를 가꾸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또 어디를 돌아가보고 살아야 하나?
향기로운 넓이와 높이를 가진 입체물들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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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보고 드러내봐도 내 앞뒤 골목은 온통 벽이로구나. 한 발로 뻥 찼을 땐 여지없이 되튕기며 발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벽.

야, 벽에도 이단 옆차기가 있고, 돌려차기가 있구나. 속이 훤히 드러난 유리벽이 있고, 보초를 세워야 하는 철조망 벽이 있구나.
그러면 벽에도 나이가 있고 학벌이 있고 지위가 있다는 것인데, 맘에 안 든 벽을 마구 감옥에 잡아넣는다면 누가 경쟁을 하나? 벽 없이도 세상을 이룰 수 있나? 우리들 마지막 버팀목이 벽이라면 벽 없이도 희망은 존재할까?
벽을 쌓으려면 스폰지를 넣거나 변경이 용이하도록 조립형으로 설계해야 하리라.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견고하게 구축하더라도 잦은 발길질과 교묘한 철거 전략에 살아남기 어려우리라. 벽은 융통성 있게 존재해야 하리라.

지금 나의 말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한 사나이가 망치를 들고 힘차게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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