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하나

생의 노래

달그리매 2006. 7. 16. 20:00
 

새순

 

 

생의 노래

 

                                        이기철

 

 


옴 돋는 나무들은 나를 황홀하게 한다.
흙속에서 초록이 돋아나는 걸 보면 경건해진다.
삭은 처마 아래 내일 시집 갈 처녀가 신부의 꿈을 꾸고
녹슨 대문 안에 햇빛처럼 밝은 아이가 잠에서 깨어난다.

 

사람의 이름과 함께 생애을 살고
풀잎의 이름으로 시를 쓴다
세상의 것 다 녹슬었다고 핍박하는 것 아직 이르다
어느 산기슭엔 샘물이 솟고
들판 가운데 풀잎이 씨를 읽힌다.

 

절망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지레 절망을 노래하지만
누구나 마음속에 꽃잎 하나씩은 지니고 산다.
근심이 비단이 되는 하루, 상처가 보석이 되는 한 해를
노래 할 수 있다면
햇살의 은실 풀어 내 아는 사람들에게
금박 입혀 보내고 싶다.

 

내 열 줄의 시가 아니면 무슨 말로
손수건 만한 생애가 소중함을 알리
초록에서 숨쉬고 순금의 햇빛에서 일하는
새의 향기를 흰 종이 위에 조금씩 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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