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하나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달그리매 2006. 7. 16. 20:03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 이기철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 놓아보렴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놓고
      구름처럼 하이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그러면 늘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 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벚꽃 그늘 아래 한 며칠
      두근거리는 생애를 벗어 놓아보렴
      그리움도 서러움도 벗어놓고
      사랑도 미움도 벗어놓고
      바람처럼 잘 씻긴 알몸으로 앉아보렴
      더 걸어야 닿는 집도
      더 부서져야 완성되는 하루도
      동전처럼 초조한 생각도
      늘 가볍기만 한 적금통장도 벗어놓고
      벚꽃 그늘처럼 청정하게 앉아보렴

      그러면 용서할 것도 용서받을 것도 없는
      우리 삶
      벌떼 잉잉거리는 벚꽃처럼
      넉넉해지고 싱싱해짐을 알 것이다
      그대 흐린 삶이 노래처럼 즐거워지길 원하거든
      이미 벚꽃 스친 바람이 노래가 된
      벚꽃 그늘로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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