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파' 논쟁 "젊은 시인들의 낯선 어법, 새
상상력"
[중앙일보 손민호] 한국 문단에 화끈한 논쟁 한 판이 벌어졌다. 이른바 '미래파'
논쟁이다. 최근 주목받는 몇몇 젊은 시인들의 새롭고 낯선 어법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놓고 편이 갈렸다. 6~7년 전 문단권력 논쟁 이후
오랜만의 본격 논쟁이란 점에서 흥미롭다.
# 미래파의 등장
'미래파'란 어휘는 지난해 '문예중앙'봄호에서 처음 선보였다.
평론가 권혁웅은 '미래파-2005년, 젊은 시인들'이란 글에서 "새로운 세대가 생산하는 시는 요령부득의 장광설이거나 경박한 유희의 산물이
아니"라며 "이들의 작품이 가까운 미래에 우리 시의 분명한 대안이라는 것을 인정할 날이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혁웅은 위 글에서
장석원.황병승.김민정 등 젊은
시인 셋을 인용했다. 이들은 모두 지난해 첫 시집을 발표했고, 첫 시집으론 이례적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여장남자
시코쿠'(랜덤하우스중앙)를 발표한 황병승은 중진 비평가 황현산이 "완전소중 시코쿠"('창작과비평'2006년 봄호)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흥미로운 건 1년 사이 미래파 숫자가 확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미래파가 한 평론가의 재기 발랄한 호명을 넘어 문단 이슈로
떠오른 까닭이 여기 있다. 애초에 호명된 건 셋이었지만, 2000년 전후 등단한 비슷한 어법의 또래 시인들, 예컨대
김행숙.김언.이민하.유형진.이장욱 등도 미래파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다. 언제부턴가 미래파는 '길고 낯설고 섬뜩한
시를 생산하는 요즘 시인들'이란 뜻의 보통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 미래파에 대한 반격
미래파에 대한 급작스런 주목은
끝내 반발을 불러왔다. 몇몇 계간 문예지들이 최근 발간된 여름호에서 미래파를 비판하고 나섰다.
가장 적극적인 건 시 전문 계간지
'시작'이다. '시작'은 "환상.전복.엽기.난해성.무의식 등을 특징으로 한 일군의 젊은 시인과 '다른 미래'를 꿈꾸고 사유하는 시인들을
선정한다"며 김선우.김이듬.박상수.박판식.손택수 등 젊은 시인 18명을 특집으로 다뤘다. 이 특집에서 비평가 이명원은 "권씨는 문단연령론과
문학세대론을 반복함으로써 시단의 혼란을 가중시켰다"며 "선배 시인들의 후배 세대에 대한 이유 있는 경계심을 오히려 부추기는 데 앞장섰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작가세계'도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의 시 세계 비판'이란 특집을 기획했다. "새롭고 낯선 징후들에 바쳐진
요란한 찬사를 걷어내고 차분한 시선으로 2000년대 상반기의 시적 현상을 돌아볼 필요"를 제기하며, 황병승.장석원.김민정 등에게 "자기 상처를
들여다보는 데서 한걸음 물러나 관계에 대해 성찰하고 자기 언어의 전략과 한계에 대해서도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기 바란다"(이경수)고 충고했다.
이외에 '창작과비평'이 '2000년대 한국문학이 읽는 시대적 징후'란 특집에서, '실천문학'이 '탈주체론을
넘어서'란 특집에서 젊은 시인들을 다뤘다.
# 미래파는 정의가 아니라 수사다
논쟁의 진원지 '문예중앙'도 여름호에서
관련 특집을 실으면서 전선을 확대했다. 권혁웅은 '행복한 서정시 불행한 서정시'란 글에서 서정시를 두 종류로 나눴다. 시적 주체와 대상이
일치되는 이른바 전통적 방식(또는 정서)의 서정시가 행복한 서정시이고, 그렇지 못한 것이 불행한 서정시라고 구분한 것이다.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는 말장난이나 실험시가 아니라 "시적 주체와 세계가 엇갈리는 비정합적인 불행한 서정시"란 주장이다.
권혁웅의 반론은 문단 일각의
오해에 대한 해명이기도 하다. 권혁웅은 미래파를 '청록파'나 '시문학파'처럼 일종의 동인(同人)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요즘 젊은 시인들의 어법이 기존 문법과 다르다고 해서 말장난이나 환상으로 치부하지 말기를, 또 하나의 진지한
문학으로 바라보기를 당부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권혁웅의 미래파는 "정의(定義)가 아니라 수사(修辭)"(김수이, '세계의문학' 2006년
봄호)다.
'미래파 논쟁'은 한국문학이 새 국면에 진입했음을 암시하는 일종의 지표다. 그들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들의 낯선
어법과 새로운 상상력은 일단 인정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 개인의 별난 실험이 아니라 집단적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에서 미래파는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비평가 박수연은 '서정과현실' 2006년
상반기호에서 "한국적 아방가르드의 진폭은 그들 각각의 개별적 성취로만 여겨졌을 뿐 유사한 지향과 형식을 갖춘 집단을 형성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최근 젊은 시인들의 시적 경향은 문학사적 사건임이 분명하다"고 의의를 밝혔다.
손민호 기자 ▶손민호 기자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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