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자연 그리고 북채(문인수시인)
강희근
1.
문인수의 시는 물끼 젖은, 그런 슬픔을 깔거나 슬픔인 정서를 감고 있다 .
"밤 깊어 더 낯선 객지에서
젖는 내 여윈 몸이 보인다.// 길게 풀리면서 오래 감기는 빗소리" (<실>에서)나 "잘 보이는 뇌리 속의 새 길게 날아가는
아래,젖어 하염없이 옹크린/ 몸, 섬 같구나 그의 유배지인 몸. "(<비>에서)이나 "누가 만리 밖에서 도 젖고 있느냐.// 비
섞어, 서서히 바람 불고 " (<슬픔은 물로 된 불인 것 같다>에서) 같은 대목이 그렇다. 슬픔이나 젖은 대목이 나오지 않을 경우라
하더라도 자연 자체가 비교적 객관적인 상태로 놓여 있으면서 그 '상태'는 표명 없는 슬픔, 그런 얼굴임을 드러내 준다.
돌 들은
단단하고도 뾰족하게 밟힌다.
유심히 내려다 보이는 돌들의 이마에는
터질 듯한 긴장감이 있다.
적의의 뿔일까
돌들을 하나씩 뒤집어 본다.
그 뺨엔 마를 날 없는 날짜들이 깊이 젖어 있다.
슬픔으로 된 뿌리인 것 같다.
-<뿔의 뿌리는 슬프다> 전문
문인수의 슬픔은 "마를 날 없는 날짜들" 에 관련되어 있다. 어떤 사물의
역사나 본질적인 흐름에 닿아 있다. 이것은 인간 삶의 본원 내지 본질이 슬픔이라는 유전자를 내포해 갖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문인수는 따옴시에서 볼 때 슬픔 캐기의 선수권을 줄 만하다 여겨진다.
'돌'→'돌들의 이마'→'적의의 뿔' 로 이어내는 상상력에서
그러하고 '돌들을 뒤집어' 보고 그 뺨에서 '날짜들이 깊이 젖어 있다' 는 것을 캐내는 것에서도 그러하다.
'바람 잘 날 없는' 인생사의
환기에 '슬픔으로 된 뿌리'를 연결해 놓는 비약도 웃음을 머금게 만든다. 아니다. 슬픔을 가슴에 찔러 넣게 만든다.
2.
문인수 시의 글감은 자연이다. 자연이면서 닮기 위한 자연이 아니라 함께 있는 자연임이 눈에 띈다.
그의 자연은
'고향','오징어','비','나무','돌','산','강','담쟁이넝쿨','매화','정선',
'가시연꽃','동백','달' 등이다. 누구나
대할 수 있는 평범한 사물이다.
방올음산은 북벽으로 서 있다.
그 등덜미 시퍼렇게 얼어 터졌을 것이다 그러나
겨우내
묵묵히 버티고 선 산
아버지, 엄동의 산협에 들어갔다
쩌렁쩌렁 참나무 장작 찍어낸 아버지,
흰내 그 긴 물머리 몰고 온
것일까
-<홰치는 산>에서
따옴시에서 아버지 (화자와 다르지 않다)는 '북벽', '시퍼렇게 얼어
터졌을',
'엄동의 산협' 등과 동격으로 자연에 참여하고 있다. 한 치도 기울거나 왕따가 되어 있거나 주눅이 들어있지 않은 상태로
참여하고 있다.
다시 한 사발, 여자의 과거사를 가득 부어 마시면
지리산, 악산 산 거칠수록 더 여러 굽이 굽이굽이 풀려서
그러나 물이 불어 시퍼렇게 자꾸 깊어지는 섬진강.
저 긴 긴 목울대 치받치며 끄윽 끅 꺾이며 흘러가는 거
보라, 逆鱗 떨며
떨리며 대숲은 넓고 또 넓다 난분분 난분분 매화 뿌린다
-<매화> 후반
여기서도 아버지처럼 화자는 여자의
과거사를 마시고 깊어지는 섬진강 목울대 치받는, 끄윽 끅 꺾이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러운 대숲과 난분분 매화에 어울려 있기도 하다.
이쯤이면 시인은 자연에 대한 이해와 달관을 넘어 자연의 섭리 속으로 들어가 있는 셈이다. 동일성이나 동일 지향이 아니라 동일격(同一格) 으로
존재하는 세계, 그런 시인의 자유로운 세계를 열고 있는 것이다.
또 어떤 마을 앞에 서 있었네 산에,산에 살던 엄청난 고요가 컹
컹 컹 컹 나를 구경하였네 컹 컹 컹 ... 꼬리 감추었네 비 뿌렸네
내 몸 젖는 소리만 소란스러웠네
-<다시
정선, 또 어떤 마을 앞에 서 있었네> 전문
화자는 산마을 앞에 서 있고 산의 고요가 화자를 구경하고 있다는 요지이다.고요와
화자의 대칭 그 거리감을 느낄수 있으면서도 '몸에 젖는'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되어 있다. 동일격의 실현이 '젖는'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3.
문인수 시인 시의 강점은 <채와 북 사이,동백 진다>에서 세밀히 드러난 것 처럼 시에서 자연공간이
유기적으로 놓여 움직이는 교향악 체계를 보여준다. 교향악 체계는 자연의 소단위가 각기 협연으로 참여한다는 의미인데 <채와 북 사이,동백
진다>는 국악 한마당이다.
지리산 앉고,
섬진강은 참 긴 소리다
저녁노을 시뻘건 것 물에 씻고 나서
저 달, 소리북 하나 또 중천 높이 걸린다
산이 무겁게,발원의 사내가 다시 어둑어둑
고쳐 눌러앉는다
이 미친 향기의
북채는 어디 숨어 춤추나
매화 폭발 자욱한 그 아래를 봐라
뚝, 뚝, 뚝, 듣는 동백의 대가리들,
선혈의 천둥
난타가 지나간다
-<채와 북사이,동백 진다>전문
자연의 소단위들이 이렇게 하나로 모여 집회를
이루는 시를 달리 볼 수 있었던가.
지리산,저녁노을, 달, 매화, 동백들이 섬진강을 중심으로 몰려나와 한마당 판소리 공연을 연출해 낸다.
소리북은 달, 소리는 섬진강, 고수는 지리산이다. 그리고 북채의 경우 괄호로 남겨 둔, 아니 대표 엔트리 가운데서 후보선수 경쟁붙이기와 같은
그때 그때 컨디션 좋은 소단위를 독자가 선발해 넣을 수 있게 하는 그런 여유의 기법을 쓰고 있다, 시인은 색채공간의 자연을 일거에 소리공간으로
만들어 내는 주술사 역활을 하고 있는데 때로는 시인이 저승과 이승을 내왕하는 사제 (司祭)의 역할을 했던 것을 떠올려 주기도 한다.
시
<꼭지>는 아들 낳기를 염원하여 붙인 이름인데, 꼬부라진 할머니가 된 꼭지를 그리고 있다. 꼭지 할머니의 배고픈 서러움을 테마로 하고
있다. 이 시에서는 교향악적 체계가 시간을 두고 이루어져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림을 그려 보면 다음과 같다.
화자는
독거노인 꼭지 할머니가 동사무소로 가는 것을 달팽이 같다고 말한다. 이것은 현재의 꼭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봇대 아래 민들레꽃이 노랗게
피어서 젖배 곯아 노오란 꼭지의 과거를 일깨워 준다. 또한 꼭지가 하늘 꼭대기로 언제나 넘어갈 것인가 하고 미래의 꼭지를 말하고 있다. 화자는
젖배 곯았떤 꼭지의 과거를 '민들레 꽃'으로 말하고 고픈 배 접고 있는 꼭지의 현재를 '달팽이'로 말하고 하늘 꼭대기로 넘어가는 꼭지를 '새'로
말하여 시간적 경과를 포괄하는 시간 교향악을 연주하고 있다. 그러니까 '화자 →민들레꽃 →달팽이 →새'는 동일격(同一格)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시인의 시야는 그만큼 거시적이면서도 동시에 미시적인 원근 조망의 거리 조절이 자유자재롭다 하겠다.
<가시연꽃>도 우표늪을
채우고 있는 잎, 뿌리, 꽃대궁 ,피칠갑의 꽃봉오리,줄기 등이 이루어내는 교향악 체계이다.
그러나 누가 말할 수 있으리.
마침내 고요히 올라앉은 滿 開, 만개의 캄캄한 문, 만 번은 또 무너지며 신음하며 열어제쳤겠다 악의 꽃, 저 길의
끝
오,저 고운 웃음에 대해 숨죽여라 지금
소신공양중이다.
-<가시연꽃>후반
우포늪의 신비는
결국 '악의 꽃' 이기도 한 '저 고운 웃음'의 만개를 위해 벌이는 굿판인 것이다. 만개의 북채는 무엇이며 누가 잡고 있는가. 그것이 누구이든
성스럽기 짝이 없다. 소신공양을 위한 빨랑카가 되기 때문이다. 시인이 정선 깊숙히 유폐되듯이 들어가는 것이나 객지에서 여윈 몸이 한없이 젖고있는
것이나 '냅다, 불위에 눕는 마른 오징어'의 처지가 되는 것이나 폭발하는 나무이거나 난타가 지나가는 것이나 모두 문시인 시의 소신공양으로
읽힌다.
4.
문인수의 시가 슬픔의 정서라는 점은 서정의 본질에 그의 시가 착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글감이나
사색이 궁구의 끝점까지 가 닿으면 비늘처럼 이는 것은 젖은 슬픔일 것이다. 화자가 자연 장치들에 동일 지향으로 놓이지 않고 동일격으로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여늬 서정시인과 문신인을 구별하는 기준이 될터이다. 동일격으로 북을 바라보고 소리내는 강을 바라보며 그때마다 북채를 골라
쥐게 하거나 골라 쥐는 화자를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문시인은 자연을 알고 그 속성에 따라 적절히 놀아주면서 자연의 장치들과 동격을 이루는
것이다. 자연의 장치들을 닮거나 따르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자연을 경우에 맞게 활용하거나 부리는 , 북채 잡히기의 서정은
아무나 지니게 되는 것이 아니다.
언어를 고르고 수를 뜨고 무늬를 앉히는 탄력이 연주가의 난타 수준이라 할만하다. 문시인의 장래를 이
모든 것들이 약속해 주고 있다 할 것이다. 필자로서는 다만 문시인이 한국시 전반의 스케일에 대해 생각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더 큰 궁량과
세계를 통해 이루어내는 '위대한 격(格)'을 생각해 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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