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자
송남선
어머니는
여름내 감자밭에 엎드려 있었다
적삼에 감자꽃물이 밸 때쯤 저녁 이슬은 어느새 발목에 차고 대궁 굵은 개쑥은 비
한 방울 없이도 잘 자랐다.
감자꽃은 피웠다지고 버린 땅에서도 씨알은 자라는데
한여름 익어가는 밭에 엎드린
어머니는 어미 새처럼 알 굵은 감자를 품고 있었다
☆----- 눈 감으면 보이는
어머니
함동선
또랑물에 잠긴 달이 뒤돌아 볼 때마다 더 빨리 쫓아오는 것처럼, 얼결에 떠난 고향이 근 삼십년이 되었습니다. 잠깐일 께다,
이 살림 두고 어딜 가겠니, 네들이나 휑하니 다녀오너라. 마구 내몰다시피 등을 떠미시며 하시던 말씀이 노을이 불그스름하게 물드는 창가에 초저녁
달빛으로 비칩니다. 오늘도 해동갑했으니 또 하루가 가는가. 언뜻언뜻 떨어뜨린 기억의 비늘들이, 어릴적 봉숭아 물이 빠져 누렇게 바랜 손가락
사이로 그늘졌다 밝아졌다 그러는 고향집으로 가게 합니다. 신작로에는 옛날처럼 달맞이꽃이 와악 울고 싶도록 피어 있었습니다. 길잃은 고추잠자리가
한 마리 무릎을 접고 앉았다가 이내 별들이 묻어올만큼 높이 치솟았습니다. 그러다가 면사무소 쪽으로 기어가는 길을 따라 자동차가 뿌옇게 먼지를
일으키고 동구밖으로 사라졌습니다. 온 마을 개가 짖는 소리에 대문을 두들겼습니다. 안에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손 안 닿은 곳 없고 손
닿은 곳마다 마음대로 안되는 일이 없으셨던 어머니는 어디로 가셨습니까? 눈 감으면 보이는 어머니는 어디에
계십니까?
☆----- 달 어머니
지인
붉은 모란꽃 속에 숨어 있던 불붙은 수탉 한 마리 피렌체 성당 지붕위로 날아 올라갔다
청동종탑
너머 둥근 달 어머니 품 속으로 돌아갔다
어머니, 어머니 달 어머니 젖을 주소서
모란꽃잎 물과 불과 공기의
허무 속으로 뚝,뚝 떨어지고 까만 씨방 속에 노란 보석이 보석 속에 흰 알이 알 속에 빨간 해가 달 어머니의 빛의
젖을 먹고 자라고 있다.
☆----- 또 비가
오면
이성복
사랑하는
어머니 비에 젖으신다 사랑하는 어머니 물에 잠기신다 살 속으로 물이 들어가 몸이 불어나도 사랑하는 어머니 微動도 않으신다
빗물이 눈 속 깊은 곳을 적시고 귓속으로 들어가 무수한 물방울을 만들어도 사랑하는 어머니 微動도 않으신다 발밑
잡초가 키를 덮고 아카시아 뿌리가 입 속에 뻗어도 어머니, 뜨거운 어머니 입김 내게로 불어온다
창을 닫고 귀를
막아도 들리는 빗소리 사랑하는 어머니 비에 젖으신다 사랑하는 어머니 물에 잠기신다
☆-----
만찬
함민복
혼자
사는 게 안쓰럽다고
반찬이 강을 건너왔네 당신 마음이 그릇이 되어 햇살처럼 강을 건너왔네
김치보다 먼저
익은 당신 마음 한 상
마음이 마음을 먹는 저녁
☆-----
사모곡
신달자
길에서
미열이 나면 하나님 하고 부르지만 자다가 신열이 끓으면 어머니, 어머니를 불러요
아직도 몸
아프면 날 찾냐고 쯧쯧쯧 혀를 차시나요 아이구 이꼴 저꼴 보기 싫다시며 또 눈물 닦으시나요
나 몸 아파요,
어머니 오늘은 따뜻한 명태국물 마시며 누워 있고 싶어요 자는 듯 죽은 듯 움직이지 않고 부르튼 입으로 어머니
부르며 병뿌리가 빠지는 듯 혼자 앓으면 아이구 저 딱한 것 어머니 탄식 귀청을 뚫어요
아프다고 해라
아프다고 해라 어머니 말씀 가슴을 베어요
☆----- 수의(壽衣)를 만드시는
어머니
정호승
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데 나는 병 들어 담배도 한 대 피우지 못하는데 아직도 사랑과 욕정도 구분하지 못하는데 낡은 재봉틀 앞에
앉아 늙은 어머니 수의를 만드신다 전구를 넣어 구멍난 양말 꿰매시던 손으로 팬티에 고무줄 넣어 추스려주시던 손으로 이 병신
같은 자식아 지금까지 그런 걸 여자라고 데리고 살았나 힘없이 내 등줄기 후려치던 손으로 삯바느질하듯 어머니 수의를
만드신다 연 사흘 공연히 봄비는 내리는데 버들개지 흰눈처철 봄바람에 날리는데 죽음이 없으면 부활도 없다는데 몇날 며칠째
정성들여 그날이 오면 아, 그날이 오면 입고 갈 옷 손수 만드신다 돋보기를 끼고도 바늘귀가 안 보여 몇번이나 병들어 누워 있는
나를 부른 돈 없어 안안팎 명주로는 하지 못하고 굵은 삼베로 속곳부터 만들고 당목으로 안감 넣고 치마 저고리
만드신다 죽으면 썩을 것 좋은 거 하면 뭐하노 내 죽으면 장의사한테 비싸게 사지 마라 사람은 죽는 일이 더 큰 일이다 숨
끊어지면 그만인데 오래 살아 주책이다 처녀 때처럼 신나게 재봉틀을 돌리신다 봄은 오는데 먼 산에 아파트 창틈으로 고놈의 버들개지
봄눈처럼 또 오는데 나는 이혼하고 병들어 술 한 잔도 못 먹는데 죽음이 없으면 삶이 없구나 사람은 살아 있을 때 사랑해야
하는구나 사랑이 희생인 줄 모르는구나
☆----- 어머니
김동리
가을 들녘에 내리는 황혼은 내 어머니의 그림자 까마득한 옛날 이미 먼 나라로 가신, 그러나 잠시도 내
곁을 떠난 적 없는 따스한 햇볕처럼 설운 노래처럼 언제나 내 곁을 맴도는 어머니의
그림자
☆-----
어머니
고정애
굽이
떨어져나갔다 보이지 않는 곳 맨 아래 바닥에 엎드려 끄는 대로 스치면서 닳으면서 돌뿌리 자갈에 수없이 채이면서
무거운 몸체 받들다 의젓하게 돋보여라
균형을 잡아주며 평생 살다간 낡고
오래된 굽.
☆----- 어머니 5
반칠환
산나물 캐고 버섯 따러 다니던 산지기 아내 허리 굽고, 눈물 괴는 노안이 흐려오자 마루에 걸터앉아 먼 산
바라보신다 칠십년 산그늘이 이마를 적신다 버섯은 습생 음지 식물 어머니, 온몸을 빌어 검버섯 재배하신다 뿌리지
않아도 날아오는 홀씨 주름진 핏줄마다 뿌리내린다 아무도 따거나 훔칠 수 없는 검버섯 어머니, 비로소 혼자만의 밭을
일구신다
☆----- 어머니가 가볍다
이승하
아이고 - 어머니는 이 한마디를 하고 내 등에 업히셨다
경의선도 복구 공사가 한창인데 성당 가는 길에 넘어져 척추를 다치신 어머니
받내는 동안 이렇게 작아진
어머니의 몸 업고 보니 가볍다 뜻밖에도 딱딱하다
이제 보니 승하가 장골이네 내 아픈 니를 업고 그때 …
어무이, 그 얘기 좀 고만 하소
똥오줌 누고 싶을 때 못 눠 물기 기름기 다 빠진 70년 세월 업으니 내
등이 금방 따뜻해진다.
☆----- 어머니날에
문효치
빛은 빛이면서 당신의 몸을 비치지 못하고
소리는
소리이면서 당신의 귀를 밝히지 못한다.
기도는 기도이면서 당신의 구원을 빌 짬이 없고 목숨은 목숨이로되
당신의 영화를 도모할 겨를 없다.
언제나 당신은 우리의 그늘 뒤에 서시며
그래서 그 그늘은
오히려 따스하고 환하다.
☆----- 어머니는 독이다
이정록
동서벌꿀
유리병에, 놋숟가락으로 고추장을 퍼담아 주시며 아무 말씀 없으시다 어머니의 묵묵부답과 나의 안절부절이 범벅으로 채워진다 뚜껑을 닫고, 병주둥이를
훔친 뒤에도 눈길을 주시지 않는다 돌아와, 잘 도착했어요 인사 올려도, 숨소리만 거칠 뿐이다 時祭도 빠지고, 서천말 주씨 喪家에도 못
내려갔는데, 그저 몸이나 조심하란다 싱크대 위고추장 병이 끓어오른다 뚜껑을 열자, 어머니의 검붉은
肝이 거기에 있다 녹슨 쇳덩어리 부글부글, 내 몸을 덮친다 肝에다 장을 담구시는 어머니는
독이다, 독항아리시다
☆-----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김경주
고향에 내려와 빨래를 널어보고서야 알았다 어머니가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는 사실을 눈 내리는
시장 리어카에서 어린 나를 옆에 세워두고 열심히 고르시던 가족의 팬티들, 펑퍼짐한 엉덩이처럼 풀린 하늘로 확성기소리
짱짱하게 날아가던, 그 속에서 하늘하늘한 팬티 한 장 꺼내들고 어머니 볼에 따뜻한 순면을 문지르고 있다 안감이 촉촉하게
붉어지도록 손끝으로 비벼보시던 꽃무늬가 어머니를 아직껏 여자로 살게 하는 한 무늬였음을 오늘은 죄 많게 그 꽃무늬가 내
볼에 어린다 어머니 몸소 세월로 증명했듯 삶은, 팬티를 다시 입고 시작하는 순간 순간 사람들이 아무리 만지작거려도
팬티들은 싱싱했던 것처럼 웬만해선 팬티 속 이 꽃들은 시들지 않았으리라 빨랫줄에 하나씩 열리는 팬티들로 뜬 눈 송이
몇 점 다가와 곱게 물든다 쪼글쪼글한 꽃 속에서 맑은 꽃물이 똑똑 떨어진다 눈덩이만한 나프탈렌과 함께 서랍 속에서
수줍어하곤 했을 어머니의 오래 된 팬티 한 장 푸르스름한 살 냄새 속으로 햇볕이 포근히 엉겨
붙는다
☆----- 어머니를 버리다
정병근
풍 맞은 어머니가 밥을 드신다 안간힘으로, 왼쪽으로 오므려 씹는 만큼 오른쪽으로 밥알이
몰린다 오그랑오그랑 로봇처럼 밥을 씹는다 넘어가는 밥보다 흘리는 밥이 더 많다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넙죽넙죽 잘도
받아 먹는다 우리 어머니 꼭꼭 씹어라 꼭꼭 씹어 풍 맞은 어머니 말이…안…된다 밥은 묵었나 밥은 묵었나 전화 속의
목소리 이젠 들을 수 없다 살아서 밥밖에 할 줄 모른 어머니 줄 거라고는 밥밖에 없던 어머니 다시는 밥할 일 없다
밥 한 채 다 날리고 심심한 어머니 하루종일 누워있는 어머니 남자들에게 슬슬 버려지는
어머니
☆----- 어머니를
생각하며
김윤성
1
이
세상의 마루는 아무리 훔치고 닦고 훔치고 닦고 해도 어느새 먼지는 또 쌓이게 마련이다 어머니는 한평생을 걸레질만 하고
사셨지 어머니의 마루는 반들반들 윤이 나는데도 훔치고 닦고 또 훔치고 닦고 이렇게 아흔 여섯 해를 살다 가셨다
2
세수하면서 생각난 게 있었다. 그게 뭐였더라? 세수하다 생각난 게 있었다는 기억만은
확실한데 정작 그 생각이 뭐였는지 잊어 버렸다 TV를 보면서 턱 밑을 만져보니 꺼끌꺼끌한 수염이 그대로다 아침에 세수할 때
꼭 면도하리라 마음 먹었었는데…… 대속나무는 시원스레 잎을 떨쳐 버리고 뼈대만 남은 까만 가지마다 눈부신 햇살을
담고 언제 파란 잎과 열매를 달았었느냐고 한다. "왜 이렇게 죽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어서 빨리
죽어야했는데……" 아들을 향해 짐짓 미안해 하신 어머니 그 어머니는 이제 어디에? 한 줌의 재로 변한 어머니의 육신을
유골함에 담아 납골당에 모셔놓고 돌아오던 길 火葬으로 모신 게 왠지 죄스러워 동행한 아들에게 넌지시 이른다 "나도 죽거들랑
꼭 화장해다오!"
3
두들겨라 건반을 멋대로 두들겨라 흉내도 되풀이도 못할 한 번 두들기면
그것으로 그만인 일회성의 不協和音 전화벨은 항상 예고없이 울려온다 강변 산책로에 비둘기들 시체가 널브러져
있단다 낚시에 걸려 수면 위로 낚아올려진 물고기는 태양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다 지금은 이 세상 모든
시계를 해시계에 맞출 때마다 火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인가 작은 사람은 두 시간 남짓 큰 사람은 두 시간
30분 대기실에 기다리는 사람들은 죽은 뒤에 배달된 편지를 읽듯 "몹시 뜨거울 거야" "아냐 뜨거운 줄 모를
거야"
4
과거로 과거로 자꾸만 거슬러올라 마침내 과거 없는 원점에 이르러 영원히 보이지 않게 된
어머니 "이건 꿈이로구나" 생각하며 여전히 꿈 속을 헤매이는 어디를 바라보나 온통 눈부신 푸르름의 深淵 팔을 휘저어도 손에
닿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귀를 기울여도 아무 소리 들리지 않는 그런 짙푸른 심연 속을 深海魚처럼 잃어 버린 눈을 찾아
헤매이는 어머니 어머니 "언제 또 만나뵐 수 있을까요?" 만나뵐 수만 있다면 아무리 먼 여행이라도
하겠습니다." 이제는 누구에게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될 그런 꿈 속에서 깨어나지 마소서 깊이 깊이 잠드소서 어머니. 잠
속에 꿈이 있듯 죽음 속에서 꿈이 있다면 꿈 속에서나마 뵐 수밖에요 이곳은 아직도 바람이 불면 나무는 나무대로 돌은
돌대로 바람 부는 쪽으로 기울고 겹겹이 포개어진 통통한 꽃봉오리 따가운 햇볕에 벙글고
있습니다.
☆----- 어머니의
눈물
박목월
회초리를
들긴 하셨지만 차마 종아리를 때리시진 못하고 노려 보시는 당신 눈에 글썽거리는 눈물
와락 울며 어머니께 용서를
빌면 꼭 껴안으시던 가슴이 으스러지도록 너무나 힘찬 당신의 포옹
바른 길 곧게 걸어 가리라 울며
뉘우치며 다짐했지만 또다시 당신을 울리게 하는
어머니 눈에 채찍보다 두려운 눈물 두 줄기 볼에
아롱지는 흔들리는 불빛
☆----- 어머니의 밥
이향아
'얘야 밥 먹어라' 어머니의 성경책 잠언의 몇 절쯤에
혹은 요한계시록 어디쯤에 금빛 실로 수를 놓은 이 말씀이 있을 거다.
'얘야, 밥먹어라 더운 국에 밥
몇 술 뜨고 가거라'
아이 낳고 첫국밥을 먹은 듯, 첫국밥 잡수시고 내게 물리신 당신의 젖을 빨고 나온 듯
기운차게 대문을 나서는 새벽.
맑은 백자 물대접만한 유순한 달이 어머니의 심부름을 따라 나와서 '채할라
물마셔라, 끼니 거르지 말거라' 눈 앞 보얗게 타일러 쌓고
언제부터서인가 시원의 검은 흙바닥에서부턴가 마른
가슴 헐어내는 당신의 근심 평생토록 밥을 먹이는 당신의 사랑.
☆-----
어머니의 섬
이해인
늘 잔걱정이 많아 아직도 뭍에서만 서성이는 나를 섬으로 불러주십시오. 어머니
세월과 함게
깊어가는 내 그리움의 바다에 가장 오랜 섬으로 떠 있는 어머니
서른세 살 꿈속에 달과 선녀를 보시고
세상에 나를 낳아주신 당신의 그 쓸쓸한 기침소리는 천리 밖에 있어도 가까이 들립니다
헤어져 사는 동안
쏟아놓지 못했던 우리의 이야기를 바람과 파도가 대신해주는 어머니의 섬에선 외로움도 눈부십니다 안으로 흘린
인내의 눈물이 모여 바위가 된 어머니의 섬 하늘이 잘 보이는 어머니의 섬에서 나는 처음으로 기도를 배우며 높이
날아가는 한 마리 새가 되는 꿈을 꿉니다. 어머니
☆----- 어머니의 성경
박목월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이 책은 어머니께서 유물로 남겨주신 성경이다. 이 두툼한 성경을
성경주머니에 넣어 드시고 사경회로 부흥회로 다니시며 돋보기 너머로 읽으시던 그 책이다. 기쁘고 외로우실
때마다 혼자 읽으시던 그 책이다. 이 두툼한 성경을 두 손으로 모아잡고 아들을 위하여 축복해 주시고
하나님께 간구하시던 그 책이다. 붉은 연필로 언더라인을 그으시며 80평생을 의지해 사시던 그
책이다. 지금 내가 읽는 성구마다 어머니의 눈길이 스쳐가시고 어머니의 신앙이 증명해 주시고 어머니의
축복이 깃들어 있는 어머니의 성경. 어머니의 기도로써 내가 받은 축복. 어머니의 기도로써 내게 내리신
하나님의 은총. 지금 나도 돋보기 너머로 어머니의 성경을 읽으면서 자식들을 위하여 주님게 축복을 간구한다.
만일 내가 이 성경을 자식들을 위하여 유물로 남기면 우리 집안의 기도는 3대로 이어질 것이다. 주여
긍휼히 여기소서. 주여 구원하여 주옵소서. 주여 축복하여 주옵소서.
☆-----
어머니의
손
정대구
어머니의
손보다 더 깊고 큰 우주를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한많은 세월속을 헤쳐 온 그 인고의 손은 단 한 권의 영원한
고전(古典)이다 가난밖에 쥔 것 없이 뜨거운 사랑만 가득 괸 샘물이다 온갖 바람을 다스리는 솜씨로 밖에서 묻혀 온
우리들의 허물을 남몰래 밤새워 씻어주신 손 엄마 손은 약손이다 엄마 손은 약손이다 어릴 적 아픔 모조리 지워 주신
손 바늘귀를 꿰시며 문득 내다보신 어머니의 나라엔 또 천 년 시름이 강물인 듯 흐르고 날 개 접힌 한 마리
새가 안쓰럽게 떨고 있으니 받은 것 하나없이 평생을 주고도 서운한 손이 새삼 무엇을 바라시던가 눈물과 인종으로
얼룩진 어머니의 손을 보고 있으면 작은 아픔조차 가릴 수 없는 내 손이 마냥 부끄러울 뿐 어머니의 손보다 더 맑고
솔직한 고전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 어머니의 편지
문정희
딸아, 나에게 세상은 바다였었다. 그 어떤 슬픔도 남 모르는
그리움도 세상의 바다에 씻기우고 나면 매끄럽고 단단한 돌이 되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 돌로 반지를 만들어
끼었다. 외로울 때마다 이마를 짚으며 까아만 반지를 반짝이며 살았다. 알았느냐, 딸아
이제 나 멀리 가
있으마.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딸아,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뜨겁게 살다 오너라. 생명은 참으로 눈부신 것.
너를 잉태하기 위해 내가 어떻게 했던가를 잘 알리라. 마음에 타는 불, 몸에 타는 불
모두 태우거라
무엇을 주저하고 아까워하리 딸아, 네 목숨은 네 것이로다. 행여, 땅속의 나를 위해서라도 잠시라도 목젖을 떨며 울지
말아라 다만, 언 땅에서 푸른 잎 돋거든 거기 내 사랑이 푸르게 살아 있는 신호로 알아라 딸아, 하늘 아래 오직 하나뿐인
귀한 내 딸아
☆-----
엄마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잠글 수 없는 슬픔
유용선
저
혼자 여닫을 수 있는 슬픔이면 하마 슬픔이랄 것도 없네
정작 큰 슬픔은 자물쇠를 남기지 않네
당신 가버렸을 때 내 손 닿지 못할 곳으로 가버렸을 때 그제서야 알게
될 둔중한 슬픔
나로 인해 당신 슬퍼하는 줄을 내 설령 아둔한 머리로 헤아린다 한들 이대로 당신 가버린다면 내 손
닿지 못할 곳으로 가버린다면 이 또한 잠글 수 없는 큰 슬픔
가슴을 찢긴 당신 자물쇠를 든 늙은
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