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沃泉에 들다
- 이기철
오늘은 沃泉*에 자고
내일은 고비**를 향해 가리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가슴에 바느질처럼 꿰매어지는
견고한 집착들도 데리고 가리라
혼자 남은 시간마다
남 몰래 사육하던 투명한 고통들도
머리카락 쓰다듬으면 발 앞에 와 엎드리는 귀여운
통증도 데리고 가리라
가다가 온종일
닳은 햇볕에도 데이지 않은 저녁 만나면
그리움조차 쓸어낸 단칸집에 세 들어
초옥 曲字房 같은 찌든 세간들에 마음 쓰며
쌓이는
소멸과 인고를 노래하리라
밟아도 구겨지지 않는 불빛 같은 생이 내 삶의 참모습일 때
마음 속 비장해 둔 금빛 수심, 금빛
눈물을
어떤 오전에 동심의 수슬연처럼 하늘로 띄우겠는가
늘 갈림길에서 손 젓던 저주
내 것이 아니라고 돌아서던 증오마저
등 두드려
이제는 愛犬의 깃털처럼 쓰다듬어 주리
박제가 되어 버린 희망
열병처럼 다가서던 지난날의 그리움도 저녁 식탁에
초대해
옷깃의 먼지, 흩어진 머리카락 빗질해 주리
그리고 노래하리라
내일 걸어갈 길 앞에 옥천은 있다고
금화
은화로도 사들일 수 없는 삶이 내 앞에 있다고
오늘도 내 初夜 같은 열의로
노래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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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沃泉:
<오아시스>의 대용어.
**고비: 몽고 말로 <황무지>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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