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하나

沃泉에 들다

달그리매 2006. 7. 16. 19:13



沃泉에 들다

- 이기철

오늘은 沃泉*에 자고 내일은 고비**를 향해 가리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가슴에 바느질처럼 꿰매어지는
견고한 집착들도 데리고 가리라
혼자 남은 시간마다 남 몰래 사육하던 투명한 고통들도
머리카락 쓰다듬으면 발 앞에 와 엎드리는 귀여운
통증도 데리고 가리라

가다가 온종일 닳은 햇볕에도 데이지 않은 저녁 만나면
그리움조차 쓸어낸 단칸집에 세 들어
초옥 曲字房 같은 찌든 세간들에 마음 쓰며
쌓이는 소멸과 인고를 노래하리라

밟아도 구겨지지 않는 불빛 같은 생이 내 삶의 참모습일 때
마음 속 비장해 둔 금빛 수심, 금빛 눈물을
어떤 오전에 동심의 수슬연처럼 하늘로 띄우겠는가

늘 갈림길에서 손 젓던 저주
내 것이 아니라고 돌아서던 증오마저 등 두드려
이제는 愛犬의 깃털처럼 쓰다듬어 주리

박제가 되어 버린 희망
열병처럼 다가서던 지난날의 그리움도 저녁 식탁에 초대해
옷깃의 먼지, 흩어진 머리카락 빗질해 주리

그리고 노래하리라
내일 걸어갈 길 앞에 옥천은 있다고
금화 은화로도 사들일 수 없는 삶이 내 앞에 있다고
오늘도 내 初夜 같은 열의로 노래하리라

-------------------------------------------------
*沃泉: <오아시스>의 대용어.
**고비: 몽고 말로 <황무지>라는 뜻.

'별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홍류동에 혼자  (0) 2006.07.16
세월의 채찍  (0) 2006.07.16
얼굴  (0) 2006.07.16
가지 않은 길  (0) 2006.07.16
나무젓가락의 목덜미는 길고 희다  (0) 2006.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