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단순한데 ‘울림’이 크지요” | ||||||||
[나의 고전 신경림이 읽은『정지용 전집』 | ||||||||
“근대시를 학문으로 읽고 싶다면 김소월, 이상화, 주요한 등의 시를 읽어야지요. 하지만 근대시를 교양으로 읽고 싶다면 정지용의 시부터 읽어야 합니다”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겨울강좌 특강 <나의 古典 읽기> 첫 번째 시간에 만난 신경림 시인은 정지용 시인의 전집을 “우리 시에서 고전이 될 수 있는 첫 번째 시집”으로 꼽았다. “그 이전에도 유명한 시인은 있었지요. 하지만 시를 시로써 완성한 사람은 정지용 시인이 처음이라고 생각해요. 당시 대부분의 시가 감정의 분출에서 벗어나지 못했거든요. 정지용 시인이 처음으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시에 나타내기 시작했어요.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말과 우리시를 한 단계 높이는 데 정지용이 상당히 기여했다고 볼 수 있죠.” 신경림 시인이 정지용 시인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종달새」라는 시를 통해서다. “삼동내---- 얼었다 나온 나를/ 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 웨저리 놀려 대누.// 어머니 없이 자란 나를/ 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 웨저리 놀려 대누.// 해바른 봄날 한종일 두고/ 모래톱에서 나홀로 놀자.” (「종달새」 전문) 이 시를 처음 읽고 “나도 고아가 된 듯 했다”는 신경림 시인은 “정지용 시인도 고아가 아니였죠. 그런데 왜 고아인 것처럼 시를 썼을까? 사람들은 정지용 시인이 정치적인 시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사회성이 결여됐다고 비판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일제 시대 일본에서 공부하던 시인은 ‘고아’라는 이미지를 시에 자주 사용했는데, 이 고아를 통해 일본에서의 고독감과 나라 잃은 상실감을 나타내지 않았나 싶어요.” “학문으로 읽는다면 김소월, 교양으로 읽는다면 정지용”
정지용 시인의 시를 읽는 신경림
시인 “제가 중학생 때일 겁니다. 학교에서 정지용, 임화, 백석 시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모두 제출하라고 했어요. 저는 정지용 시인 시집을 가지고 있었는데 제출하지 않았죠. 그때 집에 숨겨놔야 했는데 친구들한테 자랑하려고 가지고 다니다가 결국 교련 선생님한테 걸려 빼앗겼습니다” 그때 신경림 시인은 선생님한테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선생님의 대답은 “빨갱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시인은 또 물었다. “빨갱이라는 증거가 있어요?” 선생님은 도려 “빨갱이 아니라는 증거를 대라”고 했다는 것. 시인은 참 답답했지만 도리가 없었던 당시를 떠올리며 ‘친일’ 얘기를 꺼낸다. “요즘 친일인사에 대한 말들이 많죠. 친일한 것은 분명 잘못한 것이니 역사적으로 짚어야 하는 문제죠. 하지만 친일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업적까지 모두 사장시키는 것은 잘못됐다고 봐요” 그러면서 시인은 “우리가 친일한 사람 가려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친일 하지 않은 사람을 찾아내고 기억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며 “박종화 같은 시인은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하며 민족운동했던 친일하지 않은 대표적인 시인인데 그에게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아쉬워했다. 시인은 다시 ‘정지용’ 얘기로 돌아와 애송시 중의 하나인 정지용 시인의 「고향」을 암송한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고향」전문) 전통 한시의 이미지, 민요의 우리말 재미 “이규보의 『백운소설』에 보면 이런 말이 있어요. ‘시는 말로 그리는 그림이다.’ 시를 읽으면 이미지가 떠올라야 한다는 말이죠. 정지용 시를 보면 이런 이미지들을 선명하게 볼 수 있어요. 이런 정지용의 이미지에 대해 서구적 모더니즘의 차용이라는 말이 많은데 저는 오히려 우리 전통 한시의 이미지가 정지용 시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요. 정지용 시인도 잘 짓진 못했지만 한시를 많이 썼거든요”라며 정지용 시에 대한 시인 나름의 시평을 펼쳐놓는다. 신경림 시인은 정지용 시의 특징에 대해 강한 이미지와 더불어 ‘동요’ 혹은 ‘민요’적인 시 쓰기를 든다. “「따알리아」나「내 맘의 맞는 이」같은 시들을 읽어보면 단순하면서도 힘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우리말의 재미를 맘껏 살린 민요조의 시들이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당신은 내맘에 꼭 맞는이/ 잘난 남보다 조그만치만/ 어리둥절 어리석은척/ 옛사람처럼 사람좋게 웃어좀 보시요/ 이리좀 돌고 저리좀 돌아 보시요/ 코 쥐고 뺑뺑이 치다 절한번만 합쇼// 호. 호. 호. 호. 내 맘에 꼭 맞는이.//”(「내 맘에 맞는 이」중 일부) 이날 신경림 시인의 특강에는 정원을 훨씬 웃도는 사람들이 몰렸다. 강연 뒤에는 시인과 자유롭게 나누는 대화시간이 있었는데, 수강생 한명이 최근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인터넷 소설가 ‘귀여니’ 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나의 古典 읽기> 강좌에 앞서 이병훈 문예아카데미 기획실장이 강좌를 소개하고
있다 또 ‘쉽게 쓰여 지는 시’에 대해 “사실 쉬운 시가 쓰기는 더 어려운 법인데, 설사하듯 쉽게 쓰여지는 시는 독자에게 오래도록 읽히지 못 한다”며 “시인에게 어렵게 쓰여지더라도 독자에게 쉽게 읽히는 시가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특강 <나의 古典 읽기>는 오는 2월 16일(목)까지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아카데미 제1강의실에서 열린다. 다음 강좌(1월 19일)는 아름다운 가게 박원순 상임이사가 진행하며, 1월 26일에는 『고등어』의 작가 공지영 소설가, 2월 2일에는 노회찬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2월 9일에는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2월 16일에는 정지영 영화감독이 강좌를 진행한다. 이번 강좌와 관련 문의 및 수강신청은 문예아카데미로 전화(02-739-6854~6)하거나 홈페이지(http://mycademy.org)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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