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하나

독락당(獨樂堂)

달그리매 2006. 8. 4. 10:27

독락당

                        조정권

 

 



독락당(獨樂堂) 대월루(對月樓)는
벼랑꼭대기에 있지만
옛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
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
내려오는 길을 부셔버린 이.


<산정묘지, 민음사, 1991>



이해와 감상
조정권이 추구하는 것은 쉬움이 아니라 어려움의 길이며, 평탄한 평지가 아니라 산정(山頂)이고, 세속이 아니라 신성(神聖)의 세계이다. 그 가파르고 추운 산정(山頂)에서 그는 홀로 고통스러운 싸움을 벌인다. 삶의 진정한 본질과 정신의 가없는 높이를 획득하기 위한 기나긴 싸움을.
시 「독락당(獨樂堂)」은 조정권이 추구하는 세계의 모습과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독락당 대월루를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홀로 즐거움을 누리는 집이며 달을 맞이하는 누각이 된다. 독락당 대월루는 벼랑 꼭대기에 있으며 예로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 이 세계의 범상한 장소와는 괴리된 곳에, 이 세계의 질서로부터 벗어난 곳이다. 말하자면, 독락당은 정신의 산정을 의미하는 시적 공간으로서, 신성의 세계로 상승하기 위한 길목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예로부터 그 까마득한 벼랑 위에서 은거한 이들은 왜 내려오는 길을 부셔버린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을 해볼 수 있다. 한 번 올라간 이상 포기하고 내려올 수는 없으므로, 유혹을 뿌리치기 위한 굳은 결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세속과의 연관을 모두 끊어버리고 마음을 비운 상태이므로 되돌아 내려올 길의 존재가 필요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어쩌면 아예 내려가고 싶은 마음도, 내려갈 필요성도 느끼지 못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 곳은 홀로의 즐거움으로 충만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내려오는 길을 부셔버렸든간에, 세상과 절연한 상태에서 홀로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는 이의 정신적 경지는 속인의 흠모를 자아낸다. 내려오는 길이 없으므로 올라가는 길 역시 없음은 당연하다. 그 길은 오르려는 사람 각자가 새로이 닦아야만 하는 길이다. 독락당은 이름에서 보듯 여럿이 함께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우리는 저마다 각자의 독락당에 올라야 하고, 또한 올라갈 수 있다. 저마다의 독락당으로 가는 길엔 앞서 간 사람이 없으므로 오르는 길이 없고, 오른 후에는 어떠한 이유에서든 내려오는 길을 부셔버리므로 거기에는 내려오는 길도 없다. 그러한 곳에서 시인 조정권이 추구하는 정신의 높이는 자유로움을 얻는다. [해설: 최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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